[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2> 외길 인생과 이도류 인생
취미로 양궁 시작 아시안게임 은메달
"틀에 안 박힌 개인 맞춤형 훈련 도움"
즐기면서 하다 보니 잘하는 법 찾게 돼
'축구' 유준하, '육상' 박다윤 등도 기대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한국 스포츠에 '퍼스트 펭귄'(가본 적 없는 길에 먼저 도전하는 사람)이 나와야 영광의 시대가 부활할 수 있을 겁니다.
한일 스포츠 전문가인 오시마 히로시(62) 작가는 지난달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도 운동에만 몰두하지 않고 학업이나 일을 운동과 병행하는 선수들이 나와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병행이 가능해야 저출생 시대에도 운동하는 사람이 늘어 스포츠 저변이 탄탄해질 것이란 설명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은메달리스트 주재훈(31)은 퍼스트 펭귄에 가까운 인물이다. 청원경찰(한국수력원자력 한울본부)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 메이저 국제대회 은메달을 2개나 따냈기 때문이다. 그는 운동에만 '올인'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좋아서 길을 찾으면 정상급 기량을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 체육계에 던졌다.
주재훈은 최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어릴 때부터 운동하라고 했으면 억지로 했을 테니까 안 했을 것”이라며 “즐기면서 하다 보니 재미를 느끼고 계속 잘할 수 있는 방법도 스스로 찾게 됐다”고 밝혔다.
주재훈은 학창 시절엔 운동과 거리가 멀었다. 운동 신경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생이던 2016년 학교 근처인 경북 경산의 양궁 동호회를 찾으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어릴 때 시골에서 대나무를 깎아 만든 활을 쏘고 놀던 기억이 떠올라 취미로 양궁을 시작한 것이다. 정식으로 활시위를 당긴 그는 과녁 정중앙에 명중시켰고, 출전하는 동호인 대회마다 우승했다.
주재훈은 “잘 뛰지 못하고 순발력도 좋지 않아서 운동 신경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양궁을 한번 체험해 보니 딱 적성에 맞고 재미있었다”고 돌아봤다. 양궁은 그의 일상도 바꿔놨다. 주재훈은 “성격이 급하고 멘털이 약한 편인데 활만 잡으면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졌다”며 “대회에 자주 나가다 보니 도전 의식이 생기고 자신감과 사회성까지 얻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내향적이었던 자신이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실력이 늘면서 태극마크를 달고 싶은 꿈도 생겼다. 세계 최강인 한국 양궁은 '국가대표 되는 게 올림픽 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주재훈은 4전 5기 끝에 꿈을 이뤘다. 그는 “2017년부터 매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근소한 차이로 떨어져 아쉬웠지만 꾸준히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훈련 시간이 전문 선수들보다 턱없이 적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에겐 문제 되지 않았다. 퇴근 후 일주일에 서너 차례 연습했고 훈련 시간은 하루에 3시간 정도를 유지했다. 퇴근이 늦어 양궁장에 못 갈 때는 지인의 축사에 과녁과 조명을 설치해놓고 50m 거리에서 활을 쐈다. 장비 튜닝법이나 멘털 관리 등 다른 훈련 방법은 유튜브를 보며 연구했다.
주재훈은 “다른 선수들보다 활을 빨리 쏴서 훈련량이 부족하진 않았다"며 “일을 하면서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고, 직장 일로 힘들 때 활을 쏘는 자체가 힐링이라 즐겁게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전문 선수들은 정해진 틀에 맞춰 억제된 훈련을 하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딱 맞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제2의 주재훈’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궁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생활체육 대회가 자주 열리며 동호회도 늘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실제 주재훈 외에도 가능성을 보이는 퍼스트 펭귄들이 등장하고 있다. 유준하(22·경남 FC)가 대표적이다. 그는 유소년 축구 선수로 뛰며 학업도 열심히 해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했고, K리그2(2부 리그)에도 데뷔했다. 지난해 종별육상선수권 여자 대학부에서 200m 금메달을 딴 박다윤(20·서울대 체육교육과), 고교야구 선수 출신으로 대학에서 공부하며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참가를 준비하는 이서준(20·서울대 체육교육과) 등도 새 역사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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