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위원 1명만 반대해도 인권침해 진정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규칙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등 민감 사안을 단 1명이 막아설 수 있게 된다. 합의제 행정기관인 인권위의 존립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엄중한 사안이다.
인권위에 진정되는 사건은 6개의 소위원회에 배당된다. 각각 3명의 위원이 참여하는데 전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11명 인권위원 모두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 올려 심의를 해왔다. ‘소위는 3명 이상 출석과 3명 이상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법 조항을 준용한 운용규칙에 따른 것으로 2001년 인권위 출범 후 줄곧 이 방식을 유지해 왔다. 합의제 기구 성격상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임명된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 주도로 인권위원 6명이 ‘개별 소위에서 위원 1명만 반대해도 안건을 기각시킬 수 있도록 한다’는 규칙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유불문하고 1명만 반대하면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기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안건은 그제 전원위에 상정됐지만 3시간 넘는 격론 끝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미 폐해는 현실화하고 있다. 앞서 정의기억연대가 매주 수요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 근처에서 맞불성 집회를 열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노골적 야유 등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막아달라는 진정을 냈지만, 소위 위원장인 김 상임위원이 일방적으로 기각했다. 그는 심지어 이날 전원회의에서 “앞으로도 내 방식대로 소위를 운영하겠다”고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였다.
현 정부 들어 인권위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안건 발의에 참여한 이 상임위원은 성소수자 혐오 문구를 결정문 초안에 넣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인권시민단체들은 개정안 통과 시 민감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논의 자체가 가로막힐 수 있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안건 발의자가 과반인 만큼 표결이 강행된다면 통과는 불 보듯 뻔하다. 시대에 역행하는 논의를 이제라도 접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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