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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개발바람 타고 충남서 '기획 부동산' 또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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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개발바람 타고 충남서 '기획 부동산' 또 고개

입력
2023.11.30 04:30
수정
2023.12.0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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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관광개발 틈탄 불법 기획부동산 '증가'
싼값 매입 뒤 필지 분할 "시세보다 4배 폭리"
뻔한 수법, 도로없는 분할허용 서산시도 문제

충남 서행안 일대 개발 호재에 편승한 불법 기획부동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충남 서행안 일대 개발 호재에 편승한 불법 기획부동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충남 천안에 사는 어린이집 교사 김모(30)씨는 지난 4월 구입한 충남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땅의 등기 관련 서류를 공인중개사로부터 전달받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할 땅의 지번이 계약서상의 지번과 달랐기 때문이다. 또 매매 계약 당시 분명 ‘도로가 있다’고 한 땅이었는데, 그 옆으로는 어떤 도로도 없었다. 김씨가 따지자 “땅을 모두 50평으로 분할했기 때문에 지번이 다를 수 있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한때 같이 일하던 어린이집의 원장이 소개해서 큰 의심 없이 논 165㎡(약 50평)를 5,900만 원에 계약하고 잔금까지 다 치렀다”며 “이제 와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어린이집 원장의 소개로 만난 부동산업체의 50대 여성 임원으로부터 ‘아파트 신축 예정 부지라서 사두면 몇 배 오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매를 결정했다. 고소장을 접수한 천안서북경찰서는 업자들이 어린이집 원장 등을 이용해 수당을 지급하고 매수자를 모집한 정황을 포착,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해안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김태흠 충남지사가 취임한 뒤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서산지역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시작해 주의가 요구된다. 서산시 관계자는 29일 “잠잠하던 토지 분할 등재 민원이 최근 다시 늘고 있다”며 “서산에서도 대산 지역은 예전에 기획부동산이 여러 번 활개를 치던 곳인데, 그 분위기가 재현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바둑판처럼 땅을 잘게 쪼개 되파는 것은 기획부동산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실제 지난 27일 찾은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아파트가 들어설 곳’, ‘지분 쪼개기가 늘고 있는 곳’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쌀쌀해진 날씨 탓이었는지, 밭에서 시래기 무청을 줍고 있던 주민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들판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논 주인이 서울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한테 비싸게 팔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앞으로 마을에 어떤 바람이 불어닥칠지 걱정했다.

충남도는 최근 대산항에 국제크루즈선을 내년부터 띄우겠다고 공언하는 등 서해안권 관광과 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서해안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산 시내도 그렇고 주변에 아파트가 남아도는데, 누가 그런 들판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이야길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베이밸리 매가시티 등 충남도의 서해안권 개발과 스마트팜 사업 등에 이 지역이 또다시 기획부동산의 먹잇감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획부동산 의혹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문제의 토지를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사는 한 주민이 부동산 시세를 설명하고 있다. 서산=윤형권 기자

기획부동산 의혹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문제의 토지를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사는 한 주민이 부동산 시세를 설명하고 있다. 서산=윤형권 기자

대산읍은 35년 전 대산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면서 형성된 작은 읍내다. 최근 단지 내 화학공장에서 폐암 등을 유발하는 맹독성 물질인 페놀 수백 톤을 수증기로 배출해 관련자 8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낡은 공장 설비로 인한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종종 발생해, 불안에 떠는 주민들에게 공단 측이 지난달 방독면 500개를 보급하기도 했다. 대산읍은 공단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인데, 2011년에 주민 인구가, 1만6,268명에서 지난 10월엔 1만3,169명으로 3,000여 명이 줄어든 서산시의 대표적인 인구 감소 지역이다.

윤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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