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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따는 장애인이 놀이용 카트는 금지... 차별 여전한 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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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따는 장애인이 놀이용 카트는 금지... 차별 여전한 놀이공원

입력
2023.11.06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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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원활한데 "발달장애 혼자 못 타"
인권위 진정·소송 잇따르지만 개선 없어
"정부가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롤러코스터. 게티이미지뱅크

롤러코스터. 게티이미지뱅크

"보호자 없인 안 됩니다."

경기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범퍼카를 타려던 임영조(28)씨를 직원이 가로막았다. 임씨는 키 185cm 건장한 체격에 신체 움직임이 자유로운 성인이지만,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에서 범퍼카 단독 승차를 할 수 없었다. 혼자 탈 수 있다고 항의했지만 직원은 "안전상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답만 반복했다.

임씨에게 범퍼카를 허락하지 않은 한국민속촌은, 사실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경기도 제1호 '열린관광지'다. 장애인, 노약자 등 소외 계층의 접근권을 높이자는 게 열린관광지의 취지다. 다른 놀이공원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임씨는 울분을 토했다. "발달장애 있다고 무조건 막으면 이게 차별 아닌가요?"

누군가에겐 '꿈과 환상의 나라'인 놀이공원,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에겐 '즐거움에도 차별이 있다'는 현실을 직면하는 장소다. 장애 정도를 따지지 않고 특정 놀이기구를 아예 타지 못하도록 하는 제한이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올해 7월 세계농아인대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싱가포르 부부와 말레이시아인은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제주도 테마파크에서 놀이용 카트 탑승을 거부당했다고 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청각장애인은 운전면허도 딸 수 있는데, 무조건 놀이기구에 태우지 못한다는 내부 규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수어통역사 이목화(48)씨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분들이 '여러 나라를 여행 다녀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분노했다"고 전했다.

전동휠체어를 탔다고 케이블카 탑승을 막는 곳도 있다. 경기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2018년 단체여행에서 케이블카를 탑승하려고 한 해양관광센터에 문의했다가 "전동휠체어는 위험해서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전동휠체어가 부피를 많이 차지하다보니 몇 명 탈 수 없어 비장애인들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항의하자 그제서야 센터는 시정했다.

이렇게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놀이시설 이용을 금지하는 건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 법 제15조는 재화·용역 등의 이용에서의 차별 금지를, 제24조의2는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이 관광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방안을 강구할 것을 규정한다.

5년간 인권위 진정 30여 건

2020년 6월 18일 재오픈 기념식을 하는 홍콩 디즈니랜드. 홍콩=AP

2020년 6월 18일 재오픈 기념식을 하는 홍콩 디즈니랜드. 홍콩=AP

하지만 원론적 차별 금지 규정만 있을 뿐, 무슨 시설을 어떻게 갖추라는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없다. 유원시설(놀이기구를 갖추고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하는 시설)은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적용 대상에서도 빠져있다. 그래서 개인 단위 소송과 진정이 끊이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놀이시설에서의 장애인 차별 문제를 두고 약 30건의 진정이 들어왔다. 이 중 20여 건이 놀이기구 이용 제한 때문이었다.

진정과 소송이 이어지지만 큰 진전은 없다. 2015년 에버랜드에서 롤러코스터 탑승을 거절당한 시각장애인들이 운영사인 삼성물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2018년 승소했지만, 사측은 곧바로 항소했다. 이달 중 2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놀이기구 제조사가 시각장애인은 부상 위험이 높다고 해서 (그 권고를) 따른 것"이라며 "사고시 책임이 운영사에 있다보니 안전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범퍼카를 금지한 한국민속촌 측도 "(발달장애인이) 범퍼카가 다른 차와 갑자기 부딪히면 놀랄까봐 탑승을 제한했다"고 했다. '제한'이 아니라 '보호'라는 논리다.

"안전 때문에 제한" 내세우지만…

디즈니랜드 홈페이지에 게시된 장애인 서비스 가이드. 장애 종류에 따른 놀이공원 이용 방법, 전동휠체어 대여 방법과 장소 등을 안내하고 있다. 디즈니랜드 홈페이지 캡처

디즈니랜드 홈페이지에 게시된 장애인 서비스 가이드. 장애 종류에 따른 놀이공원 이용 방법, 전동휠체어 대여 방법과 장소 등을 안내하고 있다. 디즈니랜드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장애 인권 활동가들은 안전과 보호를 내세운 사실상의 차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수의 국내 유원시설은 애초에 장애인에게 선택권조차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디즈니랜드는 휠체어를 타고 약 35개의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에겐 수어통역과 휴대용 자막기기를 제공하는 등 장애인도 놀이공원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미국 유니버셜스튜디오도 장애 종류에 따라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갖춰놓고, 위험 요소가 있는 놀이기구는 전면 금지 대신 안전하게 이용하는 법을 설명한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놀이공원에서의 차별은) 장애인은 의식주만 해결해주면 되는 시혜적 존재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의 결과"라며 "정부 부처가 사업자에 놀이공원 조성 관련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기존 설비 개선과 함께 처음부터 장애인 이용자를 고려한 놀이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장수현 기자
최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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