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삭감 반발에 물러난 윤 대통령
내년 예산, 기초과학 등 일부 늘릴 듯
기재부 "감액 범위 내에서 증액"
윤석열 대통령이 카르텔로 지목하면서 감축을 지휘했던 연구·개발(R&D) 예산을 놓고 "재임 중 많이 늘리겠다"며 '강경 삭감 기조'를 완화했다. 야당이 예산안 협상을 앞두고 R&D 예산 회복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여당에서도 증액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생긴 셈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선 구조조정' 원칙을 내세운 만큼 내년 R&D 예산은 정부안 대비 '핀셋 증액'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 누그러진 R&D 삭감 기조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R&D 예산은 25조9,000억 원으로 올해 대비 5조2,00억 원(-16.6%) 감소한다. 보건·복지·고용, 교육, 국방 등 정부가 예산을 배분하는 12대 분야 가운데 가장 큰 삭감폭이다. R&D 예산 조이기는 총지출 증가율을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2%대로 묶는 긴축 재정의 토대가 됐다.
R&D 예산은 2019년 20조5,000억 원에서 올해 31조1,000억 원으로 4년 만에 10조 원 넘게 급증했다. 미래 투자라는 명분 뒤에서 무분별한 나눠 먹기 등 속병이 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앞서 R&D 카르텔 해체를 내세워 예산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던 배경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전날 과학계와 만난 자리에서 "연구 현장 우려를 잘 알고 있다. R&D다운 R&D에 재정을 사용하도록 해야 앞으로 예산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기류 변화를 시사했다. R&D 예산 감축에 대해 '국가 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라는 과학계 우려를 의식해 공세 수위를 낮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달 본격 개시하는 여야 간 내년도 예산안 협상에서 R&D 예산이 증액할지도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깎은 R&D 예산을 최대한 되살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야당보다 신중했던 국민의힘 역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언석 의원이 이날 "젊은 연구자 처우 개선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 밝히는 등 R&D 예산 복원을 위한 운을 뗐다.
야당도 R&D 증액 '올인' 쉽지 않아
정부도 윤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반영한 듯 R&D 예산 확대에 대한 입장을 조정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R&D가 중요하다고 해서 지출 효율화하는 노력에 구조조정 대상의 성역이 될 수 없다"면서도 "R&D 예산을 계속 줄이는 게 아니고 전문가들과 학계 의견을 들어 필요한 부분은 대거 증액하겠다"고 말했다.
관건은 R&D 예산 증액 규모다. 국회는 예산 삭감 권한은 있지만 증액에 대해선 정부 동의를 구해야 한다. 정부는 증액 동의권을 방패 삼아 R&D 예산을 늘리는 만큼 다른 사업 예산은 줄여야 한다는 전략으로 국회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화폐 예산 부활도 노리고 있는 민주당으로선 대규모 R&D 예산 증액에 '올인'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R&D 예산을 먼저 구조조정한 후 차차 늘리겠다는 윤 대통령 입장은 이번 예산안 협상에서 기초과학 등 일부 사업만 증액하는 방향이 될 가능성을 높인다. 정부의 긴축 재정 노선도 R&D 예산 증액을 제한한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예산은 감액한 범위 내에서 증액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R&D 예산 확대에 합의하더라도 내년도 총지출 656조9,000억 원을 넘기는 증액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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