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용 ‘메가시티 서울’ 공약 등장
폭발 직전 ‘수도권 과밀’ 뇌관 될 수도
정당 무책임 행태가 어쩌다 여기까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시내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문득 ‘여기서 늙으면 꼼짝도 못 하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든다.”
한국일보 연중 기획 ‘지방 청년 실종’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경북 포항 청년의 고백이다. 세계적 철강 도시인 포항에서도 청년의 삶은 고달프기만 했다. 비수도권 청년들이 느끼는 결핍은 일자리 등 몇몇 문제 해결만으로 충족될 문제가 아니다. 통계 지표로 포착하기 힘든 외로움과 답답함이다. 청년은 이를 못 견뎌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참고, 고향보다 훨씬 열악한 주거환경과 비싼 생활비를 감수하며 서울로 떠난다. 고향 친구가 한두 명 고향을 등지면 남은 청년들의 외로움과 답답함은 더 커지고 이런 악순환이 비수도권 청년 실종 사태를 만든다. 2015~21년 수도권에서 늘어난 인구의 78.5%가 청년이었다.
우리나라 ‘지방 청년 실종’은 그 시작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역대 정부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60여 년 전부터 ‘서울 인구 집중 억제 정책’과 ‘국토 균형발전 정책’을 일관성 있게 진행해 왔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정부·공공기관 이전 같은 균형발전 정책은 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취재 중 지방 이전 공공기관 근무 청년들을 만나면서, 이전 기관들이 속도는 느리지만 착실히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여당이 균형발전 정책 기조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여당 대표가 경기 김포시 서울 편입 추진을 흘리자, 논의가 서울 주변 경기 기초단체로 확대된 ‘메가시티 서울’ 구상으로 점점 부풀어 오른다. 바로 그래서 야당도 정면으로 반대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당 출신 인천시장이 “실현 불가능한 정치쇼”라고 비판했을 정도로 내년 총선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떴다방’ 식 공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포 편입 공약이 관심을 끌자, 여당 중진이 “다음은 공매도로 포커싱한다”고 문자를 보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정당은 유권자의 지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선 이후 “신행정수도 공약으로 재미를 좀 봤지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재미 본 공약’은 균형발전 흐름과 일치한다. 표 계산에 눈이 멀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중장기 국가전략마저 손바닥 뒤집듯 한다면 책임 있는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현 정부가 균형발전 정책을 선거용으로 꺼내 들었다가 용두사미가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선 공약이었던 ‘500개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은 올 상반기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무기한 연기되면서 공공기관 유치에 공을 들였던 비수도권 자치단체들과 주민의 실망이 크다.
균형발전 정책은 선거용이 되기에는 너무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다. 서울과 수도권 과밀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이미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단적으로 수도권 교통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 연간 35조 원(2018년 기준)이 넘는다. 평생 벌어도 사기 힘든 수도권 집값은 청년 혼인율과 출생률 감소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해결책은 청년이 눈물을 삼키며 서울로 떠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것이다. 중앙정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비수도권 대중교통 운행을 늘려 지방 청년들의 외출이 수월해지고, 청년들이 어울릴 생활편의 시설을 늘리는 것부터 시작하자. 메가시티는 부산-울산-경남과 전남 여수-순천-광양 등 비수도권부터 추진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최근 지역 거점 대도시가 형성되면 2053년 수도권 인구 비중은 절반 아래로 하락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또 전국 인구도 약 50만 명 늘어난다. 비수도권 청년의 눈에 김포는 이미 메가시티의 일원이다. 여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수도권이 얼마나 더 비대해지기를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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