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국민 인식 조사 8년 만에 재개
원전 필요하냐 묻기 전 "전쟁 에너지 시장 불안정" 강조
여론조사 전문가들 "질문 순서, 내용이 응답률에 영향 줘"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원자력 발전 관련 여론조사를 2015년 이후 8년 만에 재개했다. 에너지 정책에 관한 국민 의견을 알아본다는 취지인데 응답자들은 정부 원전 정책에 높은 비율로 찬성 의견을 냈다. 그러나 해당 설문 조사의 질문 순서와 내용이 응답률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설계돼 조사의 객관성을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6일 '에너지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9월 23일~10월 5일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응답자 75.6%가 '우리나라 에너지 상황에서 원전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66.1%는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원전을 설계 수명보다 더 가동하는 계속 운전에 찬성한다는 의견도 70.6%에 달했다. 응답자의 91.8%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리시설 마련이 시급하다고 봤고 53%가 본인의 거주 지역에 사용후핵연료 처리장을 짓는다면 찬성한다고 답했다. 계속 운전 원전을 늘리고 나아가 더 짓겠다는 정부의 원전 정책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반대하는 응답자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해당 설문 조사의 질문 순서와 내용이 응답률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지적한다. 재단은 설문 조사 때 맨 먼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시장 불안정성이 우리나라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응답자 82.8%가 '영향이 크다'고 답했다. 재단은 이 질문 뒤 곧바로 '원전이 필요하다고 보느냐', '우리나라 원전이 안전하다고 보느냐' 등의 질문을 이어갔다.
재단 "에너지 국민인식조사 앞으로 3개월마다 실시"
한 여론조사기관 전문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질문이 이후 원전 문항의 응답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질문 순서에 따라 응답률이 달라지는 것을 문항 순서 효과라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출신인 김동영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원도 "(질문 순서가 여론조사 결과에) 충분히 영향을 미쳤다"며 "만약 1번 문항에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게 세계적인 추세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곧바로 원전 필요성을 물었다면 찬성 응답이 확연히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거주지에 사용후핵연료처리장을 짓는 것에 대한 의견을 조사하면서도 '적절한 보상과 안전성이 보장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첨언도 찬성응답률을 끌어올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일부 설문 조사 결과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했다. '어떤 에너지믹스(전력시장에서 화석연료, 원전, 재생에너지 비율)가 적절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47%가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균형 있게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40.4%가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10.5%가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재단은 '균형 확대'와 '원전 확대' 응답률을 더해 "57.5%가 국내 원자력 발전량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에너지 전문가 등을 자문해 질문을 만들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질문은 최근 에너지 정세에 관한 의견을 묻기 위한 것으로 여론을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재단은 앞으로 원전 관련 국민인식조사를 3개월마다 실시할 예정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올해 국민인식 조사를 포함한 '사회적수용성기반조성 사업'에 예산 3억6,000여만 원을 편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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