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탈퇴에 백악관 “우리도 의무 이행 중단”
협정 없는 미중은 정상회담 계기 핵 대화 시작
미국·중국·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군비 축소 합의 구도가 재편되고 있다. 기존 양강인 미국·러시아 간 핵·재래식 무기 통제 조약이 잇달아 깨지는 와중에, 미국과 신흥 ‘핵 강자’ 중국 간 대화 물꼬가 트일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은 12월 7일부터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에 따른 의무 이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러시아가 CFE에서 탈퇴하고 다른 CFE 당사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침략 전쟁을 지속하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CFE는 미국이 주축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옛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냉전 말기인 1990년 체결한 재래식 무기 보유 상한 통제 조약이다. 미국에 앞서 러시아와 나토도 이날 CFE 탈퇴와 효력 중단을 각각 선언했다.
미국과 러시아 간 군축 합의 파기는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사거리 550㎞ 이상 핵미사일 배치를 금지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은 2019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과 배치를 이유로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일찌감치 폐기됐다. 올 2월에는 러시아가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약(New START·뉴스타트)에서 뛰쳐나갔다.
배경은 두 가지다. 우선 지난해 2월 개전 이후 미국 등 나토 회원국들이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돕는 ‘간접 전쟁’ 상황에서 양측 간 군축 조약을 유지할 명분이 극도로 약해졌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급부상이다. 미소 냉전기 ‘조연’이던 중국은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하면서 미국의 최대 전략 경쟁 상대로 떠올랐다. 핵전력도 미국과 러시아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증강됐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달 공개한 ‘2023년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올 5월 기준으로 보유 중인 핵탄두 수는 500개가 넘는다. 2030년에는 1,000개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 수는 각각 3,700개, 4,500개가량으로 파악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국은 미국·러시아 간 핵전력 제한 협상에 참여하라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양국보다 핵전력이 소규모라는 이유였다. 미국 조야에선 중국을 제외한 군축 조약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회의론이 제기됐다.
미중 간 군축·핵 비확산 관련 대화 계기는 양국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관계를 안정화해 가는 흐름 속에서 마련됐다. 미 국무부는 맬러리 스튜어트 국무부 군축 차관보가 6일 미국 워싱턴에서 쑨샤오보 중국 외교부 군축사(司) 사장(국장)과 만나 논의를 진행했다고 7일 밝혔다. 미국 측은 이 자리에서 중국에 핵 관련 투명성을 높이고 전략적 위험 관리를 위해 계속 대화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중국이 미국·러시아가 속해 있던 핵무기 통제 영역에 비로소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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