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룸카페 일탈 옥죄자, '무인 룸카페'로 몰리는 청소년
알림

룸카페 일탈 옥죄자, '무인 룸카페'로 몰리는 청소년

입력
2023.11.09 04:30
수정
2023.11.09 09:38
10면
0 0

키오스크로 주문, 신분 확인 절차 없어
일시 가림막 등 법망 피한 편법 운영도
"청소년들 안전한 만남 공간 마련돼야"

상주 직원 없이 키오스크로 이용객을 받는 경기지역 무인 룸카페. 전유진 기자

상주 직원 없이 키오스크로 이용객을 받는 경기지역 무인 룸카페. 전유진 기자

"룸카페에 자주 오는데, 옆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려 민망할 때가 많아요."

지난달 8일 경기 성남시의 한 룸카페에서 만난 중학생 신모(16)양의 푸념이다. 최근 룸카페의 밀폐된 공간이 청소년 일탈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으면서 정부도 대책을 내놨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5월부터 룸카페 방 출입문 일부를 투명하게 하고, 잠금장치도 설치하지 않도록 강제했다. 벽면이나 출입문에 가림막도 없어야 청소년 출입이 가능하게 고시를 바꿨다.

이렇게 규제를 강화했는데도, 신양의 언급만 보면 부작용은 그대로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어찌 된 일일까. 해답은 '무인' 운영에 있었다. 상주 직원이 없다 보니 규제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법령의 허점을 파고든 이런 변종 업소가 자꾸 생겨나면서 '단속 만능주의'에만 기대서는 청소년 탈선을 막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담요로 가려 괜찮아요"... 꼼수 백태 룸카페

신양이 찾은 무인 룸카페에서는 일탈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어두운 방 안에 손님이 누울 수 있는 매트리스가 구비돼 있고, 벽 곳곳에 립스틱 자국이 찍혀 있었다. 창문은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었다. 실제 방 한 곳에 들어가 보니 벽 너머로 옆방에서 나는 신음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모두 규정 위반이다. 불법·탈법을 가능하게 한 원인은 여럿이다. 우선 신분확인 절차가 있으나마나다. 기자가 방문한 수도권의 무인 룸카페 2곳도 별도의 키오스크 주문만 하면 누구나 입장이 가능했다.

관리 부재에 더해 단속을 피하기 위한 갖가지 '꼼수'도 동원되고 있다. 한 무인 룸카페는 창문 등을 담요로 가려놨는데, 당국의 점검에 대비해 손쉽게 탈부착이 가능한 형태로 설치돼 있었다. 여가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이 7월 합동 점검한 결과, 청소년보호법을 위반한 룸카페는 8곳뿐이었다. 중학생 김모(15)양은 "올 때마다 들리는 신음 때문에 소름이 끼친다"고 울상을 지었다.

담요로 창문과 문을 가린 경기 지역 무인 룸카페. 폐쇄형 룸카페를 금지한 정부 단속을 피하기 위한 꼼수다. 전유진 기자

담요로 창문과 문을 가린 경기 지역 무인 룸카페. 폐쇄형 룸카페를 금지한 정부 단속을 피하기 위한 꼼수다. 전유진 기자

수그러들지 않은 일탈 행위에도 업소들은 청소년 호객에 더욱 열을 올리는 중이다. 경기 광명시의 한 룸카페 입구에는 '단속 걱정 말고 안심하고 이용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정작 내부 시설기준은 지키지 않았다. 한 무인 룸카페 아르바이트생은 "청소하다가 사용한 피임기구 등을 하루에 한 개 이상 꼭 발견한다"고 귀띔했다. 처벌 위험을 감수한 편법 영업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업주들도 할 말은 있다. 한 무인 룸카페 관계자는 "지나다니면서 방을 들여다본다는 손님들의 불만이 많아 창문을 일시적으로 막은 것"이라며 "법에는 (가림막) 설치를 못 하게 돼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규제 능사 아냐... 청소년 문제 접근법 바꿔야"

제재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외려 변종 업소만 성업하는 실태는 정부의 규제 일변도 대책이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무인텔이 빠르게 늘어난 것처럼 무인 룸카페 역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며 "모든 업소를 상시 단속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시장은 무인 룸카페의 성장세를 인정하고 있는데, 법을 뜯어고치고 단속 강도만 높인다고 청소년 일탈을 잠재울 수 없다는 얘기다.

근본적으로 청소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해법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현숙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대표는 "성행위 등을 통제만 해선 외려 음지로 숨어들고 불법촬영, 성폭력 등 또 다른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며 "청소년의 안전한 만남을 보장하는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아이들에게도 성에 관한 욕구가 있는 만큼 운동, 취미 등 다른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를 발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유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