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청조 사기로 돌아본 사기범죄 피해자의 심리학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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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스포츠 스타의 로맨스가 희대의 사기 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사기 범죄의 심각성을 재인식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러 언론 매체에서는 사기 범죄가 우리 사회 안에 독버섯처럼 만연되어 있다며, 상습적으로 사기를 저지르는 범죄자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기 범죄의 특성과 유형, 그리고 이를 둘러싼 심리학과 해결책을 자세하게 다뤄볼 필요가 있다.
사회상을 반영하는 사기 범죄
먼저 사기 범죄의 정의는 ‘법률적으로 타인을 속여 재물이나 재산적 가치를 빼앗아 가는 행위’로 본다. 다시 말해서, 사기범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위, 이를 통해서 금전이나 재물, 재산적 이익을 불법적으로 얻는 것을 사기 범죄로 본다는 의미다.
사기 범죄는 사회적 변화상을 반영하는 속성이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엔 계주가 곗돈을 가지고 도망가는 계 사기, 유사 수신(類似受信) 사기, 토지 분양 사기, 금전 차용 사기 등이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최근엔 ITㆍBT 투자 사기, 가상자산 개발 및 투자 사기, 해외선물 투자 사기 등으로 추세가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사기범들은 사회 변화, 세계 경제 추이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ㆍ분석해 이를 자신만의 ‘사기 포트폴리오’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한동안 2차전지 개발 및 산업에 대한 사회ㆍ경제적 관심이 집중되자 이와 관련한 투자 사기가 많이 발생했다. 또 비상장 주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땐, 상장 불가능한 깡통 비상장 주식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사기가 기승을 부리며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왜 사기를 저지를까?
사기범들이 사기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원인은 범죄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 범위가 정리되고 있다. 일단 사기범들은 돈을 노린다. 그런데 사기는 짧은 시간에 여러 사람을 속여 많은 돈을 불법적으로 벌 수 있다. 이는 형사 처벌을 받는다 해도 다시 사기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특이한 점은 이렇게 취한 불법 수익은 대부분 사치나 허영, 방탕, 유흥 등에 소비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쉽게 버는 돈은 쉽게 나간다’는 격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사기범들의 이런 흥청망청 소비 행태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전청조씨는 돈을 물 쓰듯 쓰면서 주변 사람에게 자신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돈이 많은 사람’으로 내세웠다. 사람들은 보통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주변에 유명 인사들이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신뢰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는 많은 돈을 빼앗기는 결과를 낳는다.
사기범의 자기소개법
사기범들은 △번듯한 ‘공식 직함’을 가지고 사기를 벌이는 경우와 △비선 실세 또는 자금 관리책, 재벌 총수의 혼외자 등 ‘마이너 신분’을 이용하는 경우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유령 협회나 기업 연합회, 사회단체 등을 설립한 뒤 자신을 회장ㆍCEO 등 고위직 인물이라고 속인다. 후자의 경우에는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것으로 자신을 포장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다. 선한 이미지를 가진 유명 인사와의 친분을 앞세워 자신의 신용을 담보받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왜 사기범에게 홀리듯 피해를 당하고 있는가?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적은 노력으로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과도한 욕심 때문이다. ‘단기간 투자를 통해 연수익 100~200%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투자 성공 사례다. 하지만 자신이 이러한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믿기 때문에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또 우리 사회가 사기범에게 관대하다는 점도 문제다. 상습 사기범 또는 직업 사기범이 피해자를 노리고 공격하는 것을 방치하는 제도적 방임도 존재한다.
2021년 포항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이나 이번 전청조 사건은 둘 다 범죄자 본인을 사회적 권력ㆍ명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위장한 ‘신분 사칭 사기’에 해당한다. 이런 사기 유형엔 또 다른 심리적 원인이 작용한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신분 사칭 사기의 주 표적이 된다.
실제로 한 기혼 남성이 유명 대학병원의 의과대 교수로 위장한 뒤, 결혼 알선업체를 통해 여성들을 만나 사기 행각을 벌인 사건도 있었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사회적 계층 이동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이런 신분 상승 심리를 노린 것이다. 이런 사기 행각에 대해서도 사회병리학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기 범죄자들의 섬뜩한 특성
범죄 연구 현장에서 만나본 사기범들은 정상적으로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인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성이 있다. 우선 이들은 사기 행각을 삶의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대부분 결여돼 있다. 물론, 법정에선 ‘피해자들에게 사죄한다’고 언급하지만, 대부분 감형을 목적으로 한 연기라고 판단된다. 특히 피해자들이 바보 같거나, 자기 같은 허언증 환자에게 속을 정도로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를 일종의 유희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기범들은 이성 간의 사기 사건에서 상대방을 성적인 농락의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상대방이 심리적으로 완전히 나에게 종속됐다고 판단되면 또 다른 사기 범죄의 범행 수단으로 활용한다. 심할 경우 노예 수준의 지배-착취 관계로 빠진 사례도 있다.
전문 사기범들은 ‘언제든지 누구나 속일 수 있다’며 자신을 생각하는데, 이런 믿음이 매너리즘에 빠질 경우 사기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일종의 심리적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필자가 만난 한 사기범은 “사기는 도박이나 마약과 같은 중독성 범죄다. 사기에 성공하고 이를 통해 얻은 돈을 닥치는 대로 사용하면서 그 쾌감이 절정에 이른다”고 했다. 이런 사례를 많이 접하다 보니, 이들에게 죄의식이나 반성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사회적 격리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개인적 판단이 들기도 한다.
믿음의 사회를 위하여
우리 사회가 사기 범죄 없는, 신용과 신뢰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적 방어와 사회적 방어를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먼저, 과도하게 친절하거나 자신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유함 등을 강조하는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이들과 돈을 거래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점을 인간관계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투자나 금전 거래할 일이 생겼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허심탄회하게 물어보는 습관도 개인적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
아울러 너무 낮은 수준의 처벌로 인해 출소한 사기범들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국회와 사법당국은 사기 범죄에 대한 처벌을 보다 강화하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염건령 교수는?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후 한국범죄학연구소를 설립·운영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행정학과 탐정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탐정학개론, 범죄학이론 시리즈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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