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 하다인, 인간 증오하는 연진 역으로 열연
8kg 감량·과감한 염색…외적 변신 시도
하다인, 연진이는 네 삶이 묻어 있는 캐릭터니까 기술적인 거 말고 이 친구의 마음에만 집중해.
배우 하다인의 다이어리에 쓰여 있던 말이다. '뉴 노멀'이 첫 장편 주연작인 만큼 연기자로서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당연했을 터다. 그러나 하다인은 자신의 욕심이 캐릭터를 과장되게 그려낼까 걱정해 연진의 마음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영화를 빛내면서도 캐릭터를 생명력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영화 '뉴 노멀'에 출연한 하다인은 최근 서울 중구 무교동 한 사무실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뉴 노멀'은 공포가 일상이 되어버린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하다인은 인간을 증오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연진 역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다인과 정범식 감독의 인연은 '뉴 노멀' 캐스팅 이전에 시작됐다. 하다인은 정 감독을 다른 작품의 오디션 현장에서 만났다. 당시 하다인을 인상 깊게 봤던 정 감독은 이후 하다인에게 "리딩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 이 캐릭터는 신인으로 갈 거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캐릭터가 '뉴 노멀'의 연진이었다. 하다인은 "진상 등장 부분 리딩도 했고 대화를 많이 나눴다. 감독님께서 요즘 어떻게 사는지,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 주셨다"고 했다. 그 무렵의 그는 마음 쓰라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단다. "연진이를 만나기 직전에 어머니가 아프셔서 조금 힘든 시기였어요. 배우로서 길도 막막한데 가족까지 그렇게 되니까 힘들었죠."
'뉴 노멀'은 하다인에게 행운처럼 찾아왔다. 그는 대본을 봤을 때부터 작품의 입체적인 매력에 놀랐고 자신이 보여줄 부분도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다인은 정 감독에게 연진 캐릭터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당시 정 감독의 답변은 하다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다인이 "연진이가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왜 이렇게 화가 많고 그걸 저렇게 표출하면서 사는 거냐"고 묻자 정 감독은 "네가 한번 세상을 보고 알려줘"라고 답했다. 하다인은 "그때 '과제가 늘었구나' 생각했다"고 털어놓으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정 감독의 과제는 그에게 더욱 넓은 세상을 보여줬단다. 다큐멘터리 속 힘들게 사는 사람들, 어려움을 겪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의 이야기를 본 하다인은 정 감독에게 "영화보다 현실이 무겁더라. 내가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다인은 '뉴 노멀'의 이야기가 실화라고 생각하며 연진의 감정을 그려냈다. 편의점을 찾아 직접 아르바이트생의 일을 해보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포스기 사용법을 찾아봤지만 와닿지 않자 내린 결정이었다. 하다인은 "어머니랑 같이 편의점들을 돌아다녔다. 여유 있는 시간대에 사장님한테 '배워보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장은 하다인을 도와줬고 포스기에 익숙해진 그는 연진을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게 됐다. 냉소적인 태도의 손님들을 직접 만나보며 연진이의 감정 또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외적으로는 8kg을 감량하며 연진이에 가까워졌다. 하다인은 "내가 먹는 걸 좋아한다. 지금보다 오동통했는데 연진이는 파인애플 통조림, 삼각김밥만 먹고 음식에 대한 욕구가 없다. 말라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연진이 막 살지만 독특한 걸 좋아하는 캐릭터인 만큼 염색은 개성 넘치게 했으나 뿌리 염색은 하지 않았다. 티셔츠는 독특한 스타일로 입었고 신발은 낡은 모습이었다. 손톱은 검정색으로 칠하되 생활감이 묻어나야 했다. "처음 봤을 때는 제 모습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나한테 이런 얼굴과 면모가 있구나' 싶었어요. 여러 가지 역할을 해본 배우가 아니라서 더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이 캐릭터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뉴 노멀'을 본 또 다른 주연 최민호는 하다인의 연기를 칭찬해 줬다. 최지우 또한 하다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하다인은 "최지우 선배님께서 절 되게 편하게 대해주셨다. 이틀 전에도 밥 먹고 있는데 '이거 먹어라. 빵 맛있다'하면서 챙겨 주셨다"는 이야기로 선배를 향한 고마움을 표출했다. 수많은 스태프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능청스럽게 감독에게 "한방에 끝내겠다"고 말하는 정동원을 보면서는 '저러니까 인기가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따뜻한 배우들과의 만남은 하다인이 '뉴 노멀'을 통해 얻게 된 선물 중 하나였다.
관객들 눈에는 그저 반짝이는 신예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다인에게도 사실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는 "난 노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배우라는 꿈과 가족, 그 두 개 밖에 없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더라. 막막했다. 연진이처럼 표현하고 싶은데 그렇게 할 곳이 없었다. 내가 너무 작아 보이고 앞이 안 보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잡생각이 찾아오는 밤에는 2, 3시간 동안 걸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것 같은 감정들이 들었죠. 연진이가 킥보드 탈 때의 감정과 같았던 것 같아요. 물론 연진이가 저보다 더 힘들긴 하겠지만요. 연진이 같은 청년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연진의 어두운 면모는 많은 청춘들의 공감대를 자극했다. 하다인은 자신이 과거 느꼈던 감정과 새로운 경험들을 아낌없이 풀어내며 캐릭터를 완성해 냈다. '뉴 노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영혼이 보이는 연기를 펼치는 메릴 스트립, 눈빛에 캐릭터를 담아내는 공리 같은 배우를 꿈꾼다고 전했다. '뉴 노멀'을 통해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그가 앞으로도 연기를 통해 청춘들의 목소리를 내줄 수 있길 바란다.
한편 '뉴 노멀'은 지난 8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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