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3> 입시 지옥에 잠겨 있는 체육관
전문 감독 월급에 대회비·레슨비…
자녀 운동시키면 1억원 과장 아냐
일본은 교사가 운동부 담당 운영
선수 출신 봉사, 학부모가 맡기도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돈 없으면 운동 못해요.”
서울 한 중학교 스포츠클럽에서 농구를 가르치는 체육교사 A씨는 올해 고교에 진학한 제자 B군(17)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B군은 체격도 좋고 점프와 순발력 등 운동신경이 타고난 학생이었다. 슛과 드리블이 손에 익숙해지자 코트 위를 날아다녔다. 고교 엘리트 농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안도 받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농구부는 매달 기본 회비만 100만 원.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B군은 선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A씨는 “B군이 농구부에 들어갔다고 해도 회비도 안 내는 선수가 주전으로 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 축구의 간판 안정환(48)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공짜 빵과 우유를 먹기 위해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수업료 면제, 장학금, 간식 등을 이유로 운동부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딴판이다. 축구 야구 같은 인기 종목은 지도자 인건비부터 대회∙훈련 참가비 명목으로 매달 수십만~수백만 원을 내야 한다. “자녀 프로 보내려면 집안 기둥이 뽑힌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학교 예산으로 운동부가 운영되는 일본에선 돈 때문에 운동 못 시킨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두 나라의 스포츠 저변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녀가 운동하면 1억 원 든다는 얘기는 과장이 아니다. 김모씨는 일곱 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대학생 자녀를 두고 있다. 김씨는 “중고교 땐 매달 200만 원씩 들었다”고 했다. 감독과 코치 월급으로 매달 회비 100만 원은 기본이다. 여기에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갈 때마다 숙박비와 식비 명목으로 100만 원 안팎의 출전비를 따로 부담한다. 피복과 축구화 구입비, 간식비는 별도다.
초등학교는 회비가 35만 원 선이지만 15만~20만 원씩 드는 2박3일 대회가 자주 열린다. 방학 때 전지훈련을 가면 수백만 원을 내기 때문에 이런저런 비용을 합치면 중고교랑 큰 차이가 없다. 물론 프로축구 구단들이 운영하는 유스팀에 들어가면 부담이 적다. 하지만 유스팀은 연고지당 초중고교 하나뿐이라 입단이 하늘의 별 따기다. 축구 선수 출신인 이현우(37) 시흥 장곡고 교사는 “성적이 잘 나오면 ‘성과 상여금’을 따로 걷는 곳도 있다”고 했다.
야구 농구 등 다른 종목도 ‘매달 기본 회비 100만 원+알파(α)’ 구조는 동일하다. 야구 선수인 고2 자녀를 둔 박모씨는 “회비와 출전비, 사설 레슨비와 물리치료까지 최소 월 200만 원이 든다”며 “돈도 없으면서 주변에서 야구 시킨다고 하면 무조건 말린다”고 했다.
일본에선 자녀를 운동부에 보내도 큰돈이 들지 않는다. 일본 초등생의 7.8%가 가입한 공익재단인 스포츠소년단에 따르면, 단원들이 야구 축구 등을 배울 때 내는 활동비는 지역별로 연간 1만~5만 엔(8만7,000~43만6,000원) 정도다. 엔도 게이이치 스포츠소년단 부본부장은 “활동비를 받지 않는 곳도 40%나 된다”며 “선수 경험이 있는 코치가 봉사활동 차원에서 가르치거나, 학부모가 직접 자격증을 따서 지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카츠(部活∙부활동)를 통해 운동을 배우는 중고생도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오사카 스포츠 명문인 사립 곤코오사카고교의 요코이 가즈히로(48·보건체육 교사) 야구부 감독은 “부원에게 월 5,000엔(약 4만5,000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적은 부비만 받아도 운동부 운영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가 따로 고용한 전문 코치가 운동부를 지도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학교 교사가 운동부 고몬(顧問∙감독역)을 맡기 때문이다. 도쿄 도립 스기나미소고 고교의 마사카즈 우메하라(36·일본어 교사) 여자 축구부 고몬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본축구협회 B레벨 라이선스(고교생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를 땄다”고 말했다. 일본도 일부 명문 사립학교에선 제법 많은 부비를 받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축구든 야구든 돈이 너무 많이 드니 학부모들이 운동을 시키려 하지 않는다”며 “지도자들이 학부모 눈치를 보면서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경기에 내보내는 등 경쟁 체제도 왜곡돼 있다”고 말했다.
※<제보받습니다> 학교 체육이나 성인 엘리트 체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조리(지도자의 뒷돈 요구, 대학·성인팀 진학·진출 시 부당한 요구 및 압력 행사, 운동부 내 구타 등 가혹행위, 학업을 가로막는 관행이나 분위기, 스포츠 예산의 방만한 집행, 체육시설의 미개방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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