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교육 R&D 현장 적용 앞두고 종료
법에 명시된 전파연구도 중단될 위기
중기 연구장비 공동활용 1년 만에 폐지
"정책 기획·일관성 부족 보여주는 꼴"
편집자주
2024년도 R&D 예산 삭감으로 공론화된 'R&D 비효율화의 효율화'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과학, 기술, 공학, 인문·예술, 수학을 융합해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이른바 '스팀(STEAM) 교육'이 활성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쯤부터다. 당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되면서다. 이 장관은 교육부 장관 취임 이후인 올 8월에도 스팀 선도학교를 방문해 융합교육을 강조했다. 교육학계에도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에 따라 여러 교과의 지식을 융합해 창의성 발달을 촉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스팀 교육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연구개발(R&D)이 어려워졌다. 올해 27억2,500만 원이었던 예산이 2024년엔 '0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시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융합'이 강조돼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 더 확산돼야 하는 상황에서 예고 없이 벌어진 일이다. 스팀 교육 정책 연구를 해온 박현주 조선대 부총장(화학교육과 교수)은 14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10년 이상 지속돼온 정책인데다 AI 등장 등 새로운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스팀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 시점"이라면서 "초중고 학생들에게 융합교육 기회가 줄어들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R&D 효율화의 여파로 스팀 프로그램 개발을 비롯한 일부 연구사업들이 갑작스럽게 '종료'되며 우려를 낳고 있다. 필요성이 크게 줄었거나 부실이 확인된 경우라면 예산 투입을 중단해야겠지만, 정부 스스로 세운 계획이나 법적 근거가 있는데도 뚜렷한 이유 없이 종료되는 연구가 늘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계획과 달리 갑자기 '조기 종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립전파연구원은 전파법 제61조에 따라 전파 이용을 촉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새로운 기술 도입에 필요한 기준을 제·개정하는 데 필요한 시험을 하거나 국제사회의 변동에 대응하는 연구 등은 기관의 본질적인 기능이기도 하다. 1999년부터 계속돼온 전파 연구의 예산은 그러나 내년도엔 편성되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연구원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부랴부랴 찾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연구장비 활용 바우처 지원사업은 R&D를 수행하는 중소기업이 대학이나 연구기관, 민간이 보유한 장비를 대여하는 비용을 바우처로 주는 제도다. 한 해에 90억 원씩 2025년까지 3년간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 따르면 올해만 500여 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바우처를 활용했고, 책정된 예산도 대부분 소진됐다. 장비가 계속 필요한 기업들은 내년부턴 대여료를 모두 자부담하거나, 다른 수를 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연구해 놓고도 결론 못내 성과 매몰될라"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달 발간한 '2024년도 예산안 총괄분석 Ⅱ' 보고서에서 내년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는 R&D 사업이 총 158개이며, 그중 16개 사업은 당초 계획과 달리 '조기 종료(일부는 사업명 변경 후 지속 가능성)'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정책처는 "특히 착수 1, 2년 만에 사업이 종료되는 건 R&D 기획이 미비하고 정책 일관성이 부족함을 보여준다"고 꼬집으며 "차질 없이 이어져야 하는 연구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확정을 앞두고 연구현장의 우려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어확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공동대표는 "연구를 다 해놓고 마지막 예산이 부족해 성과가 매몰되는 사례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가령 최종 실증 단계에서 멈추는 경우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도 "연구자들은 다년도 과제를 수주하면 매년 쓸 연구비를 따져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면서 "연구가 중간에 종료되면 '연구비만 더 있었으면 얼마든지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핑계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