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입소해 최근까지 거주, 내부고발 후 퇴소
"사실상 보육원장 가족 가사도우미" 공익제보
원장 "보낼 장애인 시설 없어, 노동착취 안 해"
경북도, 제기 의혹 및 학대 피해 등 조사 나서
경북의 한 아동양육시설(보육원)이 열 살 때 입소한 지적장애인을 성년이 된 후에도 28년을 더 데리고 있다가 내부고발이 나오자 뒤늦게 성인 거주시설로 보내 논란이 일고 있다. 보육원 원장이 보육원 시설 일부를 개인주택처럼 개조한 뒤 건물 안 쪽방에 이 장애인을 살도록 하고 원장과 가족의 식사, 빨래, 청소 등 가사노동을 시켰다는 주장까지 제기돼 당국이 진상 조사에 나섰다.
1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연고가 없는 지적장애인 A(46)씨는 36년간 B보육원에서 지내다 올 2월 15일, 성인 노숙인 거주 시설로 거처를 옮겼다. 공익제보를 받은 경북노동인권센터가 A씨의 보육원 거주 사실을 확인한 뒤 관할 시청을 방문해 문제를 제기했고, 시청 측에서 B보육원에 전원 조치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B보육원이 A씨를 40대 중반이 넘도록 시설에 머물게 한 건 법 위반 소지가 짙다. 아동복지법은 고아원 등의 아동양육시설은 보호 중인 아동이 18세가 되거나 보호 목적이 달성됐다고 판단되면 퇴소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아동이 연장 의사를 밝혀도 최대 머물 수 있는 기간이 25세를 넘을 수 없다.
이에 대해 B보육원은 “A씨가 성년이 됐을 당시 마땅히 보낼 장애인 거주시설이 없었고, 숫자와 색깔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지적 장애 2급의 중증 장애인이라 자립 능력이 없어 보호해 왔다”는 입장이다. 보육원장 C씨는 “몇 차례 성인 시설로 입소시키려 했으나 본인이 울면서 ‘다른 곳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며 “지난해 말에도 알아봤지만 수용 정원이 초과된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을 아동양육시설에 거주하도록 한 건 명백한 잘못이라 지적했다. 경북의 한 장애인복지시설 종사자는 “A씨가 성인이 됐을 때 지역에 대규모로 운영되는 장애인 거주시설이 많았다”며 “인권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니 곧바로 전원 조치를 한 것만 봐도 그동안 다른 시설로 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게다가 원장과 그 가족이 A씨에게 가사노동을 시키고 한 달에 80만 원가량 지급되는 A씨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임의로 사용했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보육원 한 직원은 “A씨는 건물 안 쪽방에 지내며 사실상 원장 가족의 가사도우미로 살았다”며 “병원 진료 등 외출을 해야 할 때는 직원들이 원장에게 카드를 받아 데리고 나갈 정도였고, 돈도 모두 원장이 관리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직원은 “식사시간이면 으레 A씨가 보육원 급식실에 와 (원장) 집과 조리실을 오가며 음식을 날랐다”며 “양념통을 잘못 갖고 가면 부원장(원장의 아내)이 직원과 아동들 보는 앞에서 고성을 지르며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면 원장 C씨는 “시설 아이들의 식사를 살펴야 해 밥을 갖고 오도록 시킨 것은 맞다”면서도 “간단한 심부름을 부탁한 적은 있어도 가사 일까지 강요한 적은 전혀 없고, A씨의 지적 수준으로도 불가능하다”며 노동착취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이어 “정부 지원금을 관리했지만 모두 A씨를 위해 썼고 지출 내역도 일일이 행정기관에 보고했다. 통장에 아직 3,200만 원 이상 남아 있다”고 반박했다. C씨는 “직원들과 다퉈 사이가 좋지 않은 한 직원이 불만을 품고 다른 직원들과 아동들을 부추겨 음해하는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북도는 조사에 착수했다. 도 산하 장애인 학대 피해 조사 기관인 경북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현재 보육원과 A씨를 상대로 제기된 의혹들을 비롯해 학대사실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철저한 수사 촉구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인권침해를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도 제출했다. 김용식 경북노동인권센터 센터장은 “지적장애인이라 스스로 학대 사실을 알릴 수 없고 정확한 표현이 어려운 만큼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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