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5> 금메달 조바심 잠시 내려놔야
고교 선수 148명뿐… 구단 창단도 쉽지 않아
"일본은 우리를 라이벌로 안 봐… 격차 커져"
WKBL, 방과후 농구 교실로 저변 확대 앞장
"정치권·교육계, 스포츠 가치·방향 고민해야"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한국 농구는 지난달 막을 내린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일본과의 실력 차를 뼈저리게 느꼈다. 여자 대표팀은 2020 도쿄올림픽 은메달을 따낸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58 대 81로 완패했다. 남자 대표팀은 한 수 아래로 봤던 '일본 2진’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패배해 8강 직행에 실패했다. 남녀 모두 시종일관 일본에 끌려 다니며 이렇다 할 반격 한번 못해 보고 무릎을 꿇었다.
이병완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총재는 13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우리는 일본을 농구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실력 차가 많이 벌어졌다는 의미”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그는 이어 “농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야구 축구 배구까지 주요 종목 모두 라이벌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아시안게임은 쇠락기에 접어든 한국 스포츠의 현주소를 보여준 대회”라고 했다.
한일 간 스포츠 격차가 이렇게 벌어진 이유는 뭘까. 이 총재는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한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생활체육 저변을 넓히는 작업에 착수했다. 핵심은 학교 ‘부카츠(部活∙부활동)’ 활성화. 처음엔 잘 되지 않았다. 입시 경쟁이 워낙 치열했던 때라 일본 고교들은 부카츠를 외면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72년부터 부카츠 활동을 의무화했다. 이렇게 모든 학생이 한두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하는 ‘1인(人) 1기(技)’ 시대가 열렸다.
이 총재는 “일본은 1960년대 스포츠를 건강한 육체와 정신,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길러내는 핵심 가치로 이해했다”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기본 바탕에 스포츠가 깔려 있다는 걸 파악하고, 본뜨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올림픽 메달을 더 따려고 생활체육으로 전환을 시도한 게 아니라, 스포츠의 순기능에 주목했다는 얘기다. 반면 우리는 197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소수의 어린 학생을 ‘메달 전사’로 육성하는 엘리트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철학과 정책의 차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 차이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선수 풀(pool) 자체가 일본은 ‘넘사벽’이다. 이 총재는 “여자 농구 선수를 우리가 20~30평 밭에서 수확하는 거라면, 일본은 2만~3만 평 밭에서 고르고 있다”며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여자 대표팀이 지금까지 아시아 선두권을 유지했던 게 기적일 정도”라고 했다. 대한농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고교 선수는 148명으로, 일본(5만1,266명)의 0.3% 수준이다. 이 총재가 2018년 취임 당시 공약했던 ‘호남권 여자프로농구 제7구단 창단’ 작업이 무기한 보류된 것도, 선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존 6개 구단도 선수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총재는 유소년 농구의 저변을 넓히는 게 급선무라고 보고, 2019년부터 각 시도 교육청과 함께 초등학교 방과후 농구교실에 은퇴 선수를 파견하는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지원 대상 초등학교만 전국에 300여 곳에 달한다. 그는 “이 사업은 어디까지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정도의 조그마한 조치일 뿐, 근본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우리도 일본처럼 학생들이 운동을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입시 중심의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 ‘운동하는 학생’ 모델이 가능할까. 그는 “지금 우리가 쓰는 재수, 삼수, 고시 등의 용어가 모두 일본에서 넘어왔을 정도로 과거 일본은 우리보다 더한 시험의 왕국이었지만, 선진국 근간이 스포츠임을 깨닫고 국정철학을 전환하고, 교육정책을 바꿨다”며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정치권과 교육계 모두 스포츠의 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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