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 손배 사건
원고 승소 판결... "1인당 500만원씩 배상"
정부 상대 소송은 기각... "청구 기간 지나"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중 국가정보원의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당시 정부 인사들이 손해를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 이세라)는 17일 배우 문성근, 방송인 김미화, 영화감독 박찬욱 등 문화·예술인 36명이 이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그리고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이 함께 정신적 손해배상금(위자료)을 원고들에게 1명당 500만 원씩 지급하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원은 2017년 9월 "이명박 정부가 2009년 구성한 '좌파 연예인 대응 태스크포스'에서 정부 비판 성향 방송인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며 불이익을 줬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특정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관리하면서 이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활동을 제약했다는 게 골자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같은 해 11월 1억8,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들은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의 행위는 행복 추구권과 학문 및 예술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여론 악화, 이미지 훼손, 프로그램 하차 등에 따른 재산상·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원 전 원장에게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요구하거나 지시·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고, 원 전 원장도 "블랙리스트 등재 사실만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국가의 예술지원 공정성 신뢰 훼손"
법원은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 등이 원고들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의 신상정보가 기재된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배포·관리한 건 불법"이라며 "철저하게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할 공무원들이 그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했다는 점에서 불법성의 정도가 크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 등은 다른 원고들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킬 목적으로 명단을 작성해 관리하고, 지원금 지급을 배제하거나 방송 출연 등을 방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원고들은 생존에 상당한 위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추가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을 겪는 등 상당히 오랜 기간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법치주의와 국가의 예술지원 공정성에 대한 문화예술계 및 국민 신뢰가 훼손됐다"고 강조했다.
다만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점을 들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청구는 기각했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시기는 2010년 11월이고 소송을 제기한 건 2017년 11월이라 국가배상 청구 시효(5년)가 끝난 만큼 청구권이 없다는 것이다. 원고 측은 "시효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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