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박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그제 귀국했다. 윤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연설에서 세계경제 블록화에 맞선 규범 기반 다자무역체제와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강화하는 데 회원국들이 나서자고 역설했다. 다만 최대 관심사였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3분간의 짧은 만남에 그쳤다. 6년 만에 미국에 간 시 주석과 공식 테이블에 앉아 그동안 소홀했던 한중관계 개선까지 논했다면 큰 외교적 성과가 됐을 터라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방문 성과에는 올해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발표한 포괄적 협력을 바탕으로 한미일 3국 정상이 3개월 만에 다시 만나 경제·안보 연대를 재확인한 것도 포함된다. 가치를 공유하는 3국 정상 간 협력이 세계 경제·안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핵심 외교틀이라는 데 이견을 달 일은 없을 것이다. 전 세계 공급망 협력이나 무역투자 확대, 디지털 윤리규범 정립 등 경제분야는 물론 북한이 오판하지 못하도록 군사적 억지체제를 공고화하는 효과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럴수록 정형화된 외교구조에 안주하지 않는 입체적 국익관리의 필요성을 이번 한중회담 무산이 다시금 일깨워준다. 우리는 여전히 대중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데다 북한 교역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협력 없인 대북정책이 큰 힘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대중 굴종외교’에서 벗어나겠다는 말에 그칠 게 아니라, 상호 존중과 호혜를 추구하는 한중 관계로 도약할 고위급 소통공간 확보에 전력해야 한다. 다행히 26일쯤 부산에서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이 추진된다고 한다. 여기서 한중일 정상회의 조기 개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되면 이후 시 주석의 방한도 무르익을 수 있다. APEC에서 미중, 중일 정상회담이 나란히 이뤄지는 와중에 한국의 대중 외교는 경고등이 켜졌다. 한국만 중국과 정상회담을 못한다면 한중일 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외교당국은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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