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말 기준 3,857채...동구 1,078채 가장 많아
슬럼화·범죄장소 악용·미관저해 등 각종 문제 야기
정비된 빈집은 2016년부터 6년간 64채에 불과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8채씩 40채만 정비 계획
전문가, "법과 제도 정비하고, 행정력 확대해야"
"녹슬고 다 쓰러져 가는 철제 대문 앞을 지나갈 때는 환한 대낮에도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섭다니까요."
대전 동구 A아파트 인근에서 분식집을 하는 B씨는 지난 16일 오후 만난 기자에게 "밤늦게 가게 문을 닫고 지나갈 때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선다"며 이렇게 말했다.
A아파트 바로 옆에는 수년째 방치된 주택과 빌라 등 빈집 수십 채가 몰려 있으며, B씨는 여기서 150여m쯤 떨어진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이날 B씨 안내로 찾아간 빈집들은 초겨울 비가 내리면서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마당에는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 말라비틀어진 잡풀들로 가득했고, 문과 창이 떨어져 나간 방 안의 시멘트벽은 곳곳의 벽지가 찢어진 채 회색빛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B씨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한다고는 하는데, 한두 채도 아니고 저렇게 많은 집들이 벌써 몇 년째 흉가처럼 방치돼 있다"고 손사래를 쳤다.
대전지역 빈집이 쌓여가고 있다. 빈집은 수천 채에 달하지만, 정비되는 것은 1년에 10채도 되지 않는다. 도시슬럼화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만큼 서둘러 빈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20일 대전시에 따르면 실태조사를 통해 파악된 대전의 전체 빈집(주거환경개선지구 등 포함)은 2021년 말 기준으로 총 3,867채다. 동구가 1,078채로 가장 많고, 유성구는 921채, 중구는 882채, 대덕구는 544채, 서구는 442채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빈집이 많아지는 것은 신도심으로 떠나는 시민이 많고, 노령화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라는 게 시의 설명이다. 실태 조사 후 2년이 흐른 만큼 실제 빈집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빈집의 대부분은 소유자가 철거비용 부담 탓에 그대로 방치해 발생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건축물의 감가상각으로 집값이 떨어진 탓에 재개발 등을 기대하며 빈집을 그대로 두는 것도 주된 이유로 꼽힌다.
이처럼 대도시 곳곳에 빈집이 생기면서 지역사회에 각종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인근 슬럼화는 물론, 노숙자나 비행 소년들의 범죄 장소로 악용될 수도 있어서다. 쓰레기 투기나 적재로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오·폐수나 정화조 방치로 위생문제나 환경오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빈집이 급증하면서 민원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빈집이 가장 많은 대전 동구의 경우 안전조치 등을 요구하는 민원은 2019년 8건, 2020년 6건에 그쳤지만, 2021년 20건, 2022년 22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10월 말 기준으로 벌써 31건이나 접수됐다.
이에 따라 시가 철거비용 지원 등을 통해 빈집 정비에 힘을 쏟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시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6년 간 정비한 집은 64채다. 올해부터는 5년간 총 100억 원을 투입해 방치된 빈집 40채를 사들인 뒤 주차장이나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0년 넘게 정비하는 빈집이 고작 104채에 불과한 것이다.
시 관계자는 "예산이 한정돼 있어 사업을 확대하는 게 어렵고, 빈집 주인들은 다른 곳에 살면서 그대로 방치하는데, 그나마도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현재로선 획기적인 대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쌓여가는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빈집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당장 현실성은 떨어진다. 빈집세는 영국과 밴쿠버가 각각 2013년, 2017년에 도입했다. 지난해 3월에는 일본 교토시가 빈집세 도입을 위한 조례를 만들고, 상반기 총무상의 동의를 얻어 빠르면 2016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빈집세를 도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장 과세에 대한 소유자들의 저항이 클 게 뻔하고, 일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소유자들에게는 과세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빈집세 도입은 정부 차원에서 아직 검토한 바가 없다"며 "다만 소유주가 빈집을 철거할 때 세금을 완화해 주는 등 제도적 개선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도시마저 빈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만큼 더 늦기 전에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재우 목원대 교수는 "이제 도시도 주택 개발보다는 축소로 전환되는 추세에 맞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머리를 맞대로 서둘러 대응해야 한다"며 "중앙정부는 빈집세 도입 등을 포함한 법과 제도, 조직을 정비하고, 지방정부는 빈집 문제를 포함한 도시 재생에 비중을 둬 조직과 행정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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