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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cm 더 크지만 일본에 참패…한국엔 왜 '돌격대장' 송태섭이 없을까

입력
2023.11.25 12:00
수정
2023.11.25 15:4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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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한국, 키에만 의존한 농구 인재 육성
일본, 키 작아도 스피드·드리블 뛰어나
170㎝ 안팎 특급 가드들 나오며 '농구붐'
"신체 조건 관계 없이 스포츠 참여 늘려야"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 만화와 달리 농구 초보자 강백호 대신 '단신 가드' 미야기 료타(가운데·한국판 이름 송태섭)을 이야기 중심에 둔다. SMG홀딩스 제공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 만화와 달리 농구 초보자 강백호 대신 '단신 가드' 미야기 료타(가운데·한국판 이름 송태섭)을 이야기 중심에 둔다. SMG홀딩스 제공

키 168㎝의 포인트 가드가 빠른 스피드와 창의적 플레이로 경기 흐름을 쥐락펴락한다. 일본 고교의 '넘버 1'을 넘어 미국 대학 리그에 진출한다. 올 초 개봉해 한국에서만 477만 명의 관객몰이를 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인 북산고 2학년 '돌격대장' 송태섭(일본판 이름 미야기 료타) 이야기다.

한국에서 송태섭은 판타지다. 반면 일본에선 현실이다. 실제로 키 170㎝ 안팎의 특급 가드들이 계속 나오며 일본 남자 농구 프로리그(B리그) 최고 스타 자리를 두고 격돌하고 있다. 일본엔 송태섭이 있고, 한국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한된 스포츠 참여…"재능 확인할 기회 없어"

일본에선 키가 작더라도 속도와 드리블 등 다양한 재능을 갖춘 농구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다. 일본 농구 리그 대표 단신 선수들. 그래픽=김문중 기자

일본에선 키가 작더라도 속도와 드리블 등 다양한 재능을 갖춘 농구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다. 일본 농구 리그 대표 단신 선수들. 그래픽=김문중 기자

양국은 아이들이 운동을 시작하는 시스템이 다르다. 한국은 엘리트 선수를 꿈꾸는 학생만 모아놓은 운동부가 초중고교 농구 무대의 근간이다. 반면, 일본은 부카츠(部活·방과후 부활동)에서 운동을 한다. 성인 선수가 되고 싶은 학생과 취미로 농구하는 학생이 함께 운동한다. 이 때문에 농구부 가입 때 신장 등 자격 제한이 없다. 손대범 KBS N 스포츠 농구해설위원은 "일단 공을 튕기고 던져봐야 재능을 알 수 있다"면서 "훈련이나 시합을 하다 보면 키는 작아도 스피드나 슈팅, 드리블이 뛰어난 선수가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렇게 농구를 시작해 자국 리그를 지배하는 선수들이 여럿 있다. B리그 연봉왕인 도가시 유키(30·치바 제츠)의 키는 167㎝에 불과하다. 하지만 뛰어난 드리블 실력 덕에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신성' 가와무라 유키(22·요코하마 B콜세어즈)도 172㎝의 단신이지만, 지난 시즌 리그 신인상과 최우수선수(MVP) 등 5관왕을 휩쓸었다.

여자선수 중에는 야스마 시오리(29·도요타 안텔로프스)가 유명하다. 키는 161cm로 작지만 체력과 스피드를 무기로 여자 실업 리그(W리그) 2020~2021시즌 플레이오프 MVP에 올랐다. 이듬해 독일 리그에 진출해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고,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모이는 이탈리아 리그에도 진출했다.

반면 한국에선 유소년 때부터 신체 조건을 중시한다. 키 작은 아이들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농구부 가입조차 못하고 퇴짜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 선수층을 얇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의 한 중학교 체육 교사는 "중학교 여자선수를 보면 슛감각이 아무리 좋아도 키가 170㎝ 이하면 엘리트 운동부에서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지면 죽는 운동부 감독…"눈앞 승패에 올인"

지난달 3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준결승에서 한국 대표팀(남색 경기복)이 일본 대표팀에 패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 대표팀은 일본보다 평균 신장이 약 4cm가량 컸지만 3점슛만 14개를 허용하며 58-81로 참패했다. 뉴스1

지난달 3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준결승에서 한국 대표팀(남색 경기복)이 일본 대표팀에 패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 대표팀은 일본보다 평균 신장이 약 4cm가량 컸지만 3점슛만 14개를 허용하며 58-81로 참패했다. 뉴스1

중고교 농구부가 팀 성적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도 단신 선수들을 위축시킨다. 강양현 조선대 농구부 감독은 "경기에 이겨 팀 성적이 좋아야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감독도 진학 결과로 평가받는다"면서 "눈앞의 승리를 위해 키 큰 선수를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탓에 상급학교로 갈수록 키 작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출전 기회는 더 적어진다. 한국 농구판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이 단신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건 한계를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손 위원은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높이 싸움으로는 이기기 어렵다고 보고 스피드와 득점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전략을 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 남녀 대표팀에서 경기 흐름을 주도하는 선수들은 도가시 유키와 가와무라 유키, 여자농구 마치다 루이(30·워싱턴 미스틱스·162㎝) 등 단신 포인트가드들이다.

'주전들의 키가 크면 아시아에선 통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흔들린다. 지난달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남녀 대표팀 선수들(각 12명)의 신장은 일본보다 평균 4㎝ 정도 컸다. 한국 남자팀 최단신은 180㎝(허훈)인 반면, 일본은 170㎝대 선수가 3명 포진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남녀 농구팀은 모두 일본에 덜미를 잡혔다. 특히, 여자팀은 준결승에서 58 대 81로 참패했고, 남자팀은 3진급으로 구성된 일본에 졌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작은 선수들에게 농구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현우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KISS) 연구위원은 "스포츠의 매력을 어릴 때부터 직접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키와 상관없이) 학교 체육부터 방과 후 스포츠클럽, 프로 구단과 연계한 교내외 운동팀 등 여러 방식으로 참여를 늘리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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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용 기자
도쿄= 유대근 기자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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