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격벽 설치 의무화, 마을버스 미적용
61%가 미설치... 폭행, 폭언 그대로 노출
주행 중 기사 폭행, 5년 사이 2배나 늘어
"나는 왜 안 태워? 죽고 싶어?"
서울 용산 일대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김모씨는 이달 2일 오후 퇴근시간대 봉변을 당했다. 당시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70대 남성 A씨는 버스에 타자마자 "왜 그냥 가려고 했느냐"며 다짜고짜 김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술에 취한 남성은 휴대폰을 쥔 손으로 주먹질까지 했다. 김씨는 "흡연 중이라 승차하지 않는 줄 알았다"며 A씨를 달랬지만 폭언과 협박은 10분 넘게 지속됐다.
결국 김씨는 운전을 멈추고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20명 정도의 탑승객이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용산경찰서는 A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김씨가 더 위험했던 건 '보호격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호격벽 설치 의무 조항은 시내버스에만 있어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은 폭행 등 외부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가림막이 설치되지 않은 마을버스는 전체의 60%가 넘는다.
운전 중 기사 폭행, 한 해 4000건 넘겨
26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와 경찰청, 각 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운행 중인 기사를 폭행해 경찰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1만6,533건에 이른다. 2018년(2,425건)과 비교해 지난해 신고건수(4,368건)는 거의 두 배에 육박했다.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 등 중한 처벌을 받는데도 관련 범죄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을버스가 위험하다. 현행 여객운수사업법에 따라 시내버스는 운전자 좌석 주변에 격벽을 설치해야 하는 반면 마을버스는 의무 규정이 없다. 최소한의 방어막조차 없다보니 폭행 위협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전국 17개 지자체의 마을버스 격벽 미설치율은 60.9%에 달했다. 시내버스(9.2%)의 7배나 된다.
운전기사를 향한 시비와 폭언도 다반사다. 서울 한 마을버스 업체 관계자는 "차가 심하게 덜컹거린다며 기사한테 욕을 하거나 운전석을 툭툭 칠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10년째 마을버스를 모는 박희우(75)씨는 "술에 취한 승객이 주행 중 귀를 잡아당긴 적도 있다"면서 "그저 참는 게 최선"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마을버스도 격벽 설치 의무화해야"
사정이 이런데도 지자체와 운수업체는 마을버스 가림막 설치에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12년 대형 마을버스 차량 1,126대에 보호격벽 설치를 지원했지만 이후 10년이 넘도록 추가 지원은 없었다.
이유는 차체 크기에 있다. 마을버스는 통상 시내버스보다 작은 소형 카운티(전체 길이 7m대의 준중형버스)로 운행되는데, 차량 크기에 맞추려면 격벽을 특별주문해야 한다. 한 마을버스업체 대표는 "현재 서울 카운티 버스에 보호격벽을 설치한 업체는 전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격벽설치업체 관계자는 "소형 차량 맞춤형 격벽도 제작이 가능하지만, 요청이 없어 실제 설치 사례는 없다"고 전했다.
당국이나 사측이 지원을 꺼리는 만큼 기사 안전을 보장하려면 마을버스에도 격벽 의무화 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장재민 한국도시정책연구소장은 "준공영제가 적용되는 시내버스와 달리 마을버스 운영은 전적으로 민간에 맡겨져 있어 예산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격벽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년 마을버스 시설장비 개선 예산을 편성하고 있는데, 향후 보호격벽을 설치하도록 마을버스 운송사업조합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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