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주가연계증권(ELS)을 대규모로 판매해온 은행과 증권사를 상대로 긴급 실태 조사에 나섰다. 상품 만기가 속속 돌아오는데 H지수가 반 토막 이상이 나 수조 원 손실이 예고되면서다. 라임, 옵티머스, DLF(파생결합펀드)에 이어 또 한 번의 대형 펀드 사태로 번질까 걱정이다.
ELS는 기초자산이 되는 지수가 만기(통상 3년)까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한다. 그런데 H지수 연계 ELS가 집중 판매된 2021년 초 고점(12,106)을 찍었던 지수는 줄곧 하락해 현재 6,000포인트 초반이다. 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 중 50개 종목을 추려 산출되는데 중국 경제의 예상치 못한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 상품 판매 잔액은 8월 말 기준 20조5,000억 원으로 이중 절반에 가까운 8조 원대 물량이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한다. H지수가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손실 규모가 3조 원 안팎일 것으로 추산된다. 라임펀드 피해액(1조6,000억 원)의 2배에 육박한다.
금융당국은 은행과 증권사들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집중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가입자들에게 손실 가능성, H지수 변동 가능성 등을 충분히 알리고 설명했는지 여부를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원금 보장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ELS를 소개받았다”며 판매사를 고발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니 엄중 조사가 필요하겠다. 특히 이 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은 단 한 번이라도 지수가 기준선 밑으로 떨어지면 손실 가능성이 높아지는 녹인(knock-in) 상품을 대거 팔았다고 하니 위험성 고지가 불충분했을 가능성을 잘 따져봐야 할 것이다.
다만,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까지 허물어서는 곤란하다. ELS 같은 투자상품에 여러 차례 투자해 수익을 챙겨놓고 손실이 날 때만 판매사에 책임을 돌리는 이들까지 무작정 보호한다면 금융사에 투자상품은 팔지 말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투자자 보호는 철저히 하되, 총선을 앞두고 금융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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