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협치·자치·가치 실종… 중진도 역할 못해"
"정부·여당, 전 정권 지우기·야당 때리기만"
"민주당 '내로남불' 없었는지 자성할 필요"
편집자주
2020년 5월 개원한 21대 국회는 극단적 진영 대결의 장이었다. 여야는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보다 상대방 공격을 통해 손쉽게 반사이익을 누리려 했다.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란 독선은 입법 독주와 꼼수 탈당, 정치의 사법화 같은 제도 오남용으로 이어졌다. 철저한 원인 진단과 반성이 없다면 내년 4월 총선을 통해 구성될 22대 국회도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이다. 이에 여야 중진ㆍ초선 의원들의 21대 국회 평가를 징비록(懲毖錄)으로 남긴다.
“30%의 국민 마음만 얻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크다. 다수의 국민들은 등진 채 지지층 표심만 얻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극한 대결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극심한 정치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여야가 다수의 국민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열성 지지층인 30%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게 3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돌아본 21대 국회의 모습이다. 그가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년간의 21대 국회를 "협치와 자치, 가치가 사라진 시기"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1대 국회 임기 중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별다른 협치 의지를 보여주지 않은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으면서도 국회에서 여야를 중재할 수 있는 중진들의 역할이 보이지 않은 점도 뼈아프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1대 국회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21대 국회는 '3치'가 고장 난 시간이었다. 대화하고 타협하는 '협치', 삼권분립이 바로 서는 '자치', 민생 우선의 '가치'. 진정한 정치가 실종된 국회로 평가받을 거라는 걱정이 크다."
-3치 실종은 어디에서 시작됐다고 보나.
"왜 대통령이 원내 1당 대표를 안 만나나. 백번 양보해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어차피 정부를 안 도와준다'는 게 일국의 최고 지도자가 가져야 할 생각인가. 대통령 참모들이 이를 설득해야 한다. 집권여당도 실력과 포용성을 갖고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전 정권 지우기, 야당 때려잡기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그럴 때 중진들이 역할을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화와 타협이 취약해지면서 정치의 양극화가 발생했다. 과거에는 여야 중진 의원들이 나서서 양당 지도부를 설득해 입법 성과를 만들어냈다. 중진들은 상대 당 의원과 상임위원회 등에서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오면서 신뢰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국회에서 오래 활동한 중진이라고 해서 무조건 용도 폐기돼야 한다고 볼 문제가 아니다. 정치가 바뀔 수 있도록 중재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중진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이대로는 '정치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30%의 정치가 문제다. 현실에서 국민 중 40%가 투표를 안 한다 치면, 전체 국민 중 30%의 마음만 얻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결국 70%의 국민은 안중에 없는 '셈법정치'가 한국 정치의 슬픈 자화상이다. 적어도 50% 이상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선은 물론 정치문화나 여야관계 개선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역할을 할 사람들이 많이 나와줘야 한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독주한 것도 원인이지 않나.
"국민 다수가 원하는 일을 언제까지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미룰 수는 없지 않나. 오히려 상대 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국민이 민주당에 준 권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이 어느 당에 더 많이 힘을 실어주는 것은 그 정당의 뜻대로 일을 더 많이 하라는 것이다. 그게 잘못됐다면 냉정하게 평가하고, (선거로) 책임지게끔 하는 게 정치다. 양곡관리법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마지막에 국회의장의 제안을 수용했지만, 국민의힘은 그 정도 수준도 수용하지 않았다. 절충안을 이야기하면서 그 어떤 진정성도 보이지 않았다."
-검수완박법, 노란봉투법 등에 대해 "민주당은 왜 야당일 때 처리한 것이냐"는 비판도 많다.
"타이밍상 아쉬운 점은 있다. 전 정부 때 속도감 있게 처리했어야 했는데, 코로나19 정국 등으로 국회가 권력기관 개혁에 힘을 쏟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면서 검찰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막기 위한 장치를 만드는 게 어려워질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당장 국민의 삶과 직결되지 않은 사안이지만, 다수 의석을 갖고 있을 때 원칙에 따라 할 일을 하는 게 민주당에 주어진 책무였다."
-당에서도 자성이 나온 타다 문제는 박 의원이 주도한 '타다금지법'이 답이었나.
"타다 문제에서 고민은 타다의 안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 타다의 혁신성을 어떻게 다른 대중교통 영역으로 확산시킬 것이냐였다. 타다 논의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해법은 여전히 '사회적 대타협'일 수밖에 없다. 신구 산업 간, 혁신과 규제 간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은 마땅히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혁신이 제도 밖에 있었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다른 시장과 충돌이 발생하면 제도 안에서 혁신해야 한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코인 투자 논란 등으로 민주당이 도덕성 해이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 온정주의를 발휘하지 말고 보다 신속하고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 민주당에 대한 '내로남불'이라는 시각이 정치적 프레임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 우리 안에 내로남불이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돈봉투 사건도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과 무관하게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일인 만큼 정치적, 도의적 책임과 반성이 따라야 한다."
-다음 22대 국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30년 후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면, 미래 세대들은 '당시 정치권에 있었던 당신은 뭘 했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초저출생, 양극화, 지방소멸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전환기에서 진보냐 보수냐, 국민의힘이냐 민주당이냐를 따질 게 아니다. 이대로 가면 22대 국회에서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역사에 죄를 짓는 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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