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바짝 붙어! 그렇지!"
강원 춘천시 손흥민체육공원 내 축구장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러 퍼졌다. 낯익은 얼굴과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손흥민(31·토트넘) 아버지 손웅정(61) 손축구아카데미 대표이자 감독. 그는 이곳에서 축구를 배우는 14세 안팎의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할 거야? 똑바로 안 할래?", "OO아! 좋았어! 그렇게 하는 거야!" 채찍과 당근을 쏟아내는 그의 말에 축구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스무 명 남짓의 아이들은 손 감독의 예리한 눈빛을 느끼며 진지하게 경기에 임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손 감독은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느라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느라 바빴다. 내년 대회 준비를 위해 나름의 테스트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는 경기 시작 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지은 눈치였다. 아이들의 재능을 보지 않고도 말이다.
손 감독은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을 기다렸다. 넓은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축구장에 서서 부모와 함께 도착한 아이들을 지켜봤다. "저는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는 것만 봐도 성향을 알 수 있어요. 딱 걷는 것만 봐도 말이죠." 손 감독은 차에서 내려 축구장으로 올라오는 아이와 부모의 모습을 꼼꼼히 살펴본다고 한다. 그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과잉보호받는 아이들이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뛰어나도 부모와 아이의 그릇된 성향이 보이면 뽑질 않는다. 주차장에서 여기 운동장까지 올라오는 것만 보고도 벌써 70, 80%는 결정이 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손 감독은 "인성, 도덕성이 바로 서지 않으면 기량이 좋은 선수는 될 수 있어도 훌륭한 선수는 될 수 없다. 대들보가 휘면 기둥이 휜다고 부모님의 성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축구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 재능을 뒷받침해 줄 성실함과 겸손함이 갖춰져야 큰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손 감독은 지난 2019년 이곳의 7만1,000여㎡ 부지에 손흥민체육공원을 완공했다. 크고 작은 축구장 3곳과 실내구장 1곳 등이 들어섰다. 손 감독은 9~10세 아이들을 위주로 선발해 기본기부터 가르친다. 공과 친해질 수 있도록 패스와 드리블, 킥, 슈팅 등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다. 공과 몸이 하나가 돼야 축구의 기본기가 잡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2의 손흥민'을 만들고 싶어 이곳을 찾은 일부 부모들은 고개를 갸웃한다는 것. 기본을 다져야 할 아이들에게 꽃과 열매부터 따주려 한다는 거다. 그는 그런 부모들에게 작심 발언을 했다. "'계이불사 금석가루(鍥而不舍 金石可鏤)'라고 새기기를 그만두지 않아야 쇠나 돌도 뚫을 수 있어요. 반복만 한 스승이 없거든요. (손)흥민이는 이런 기본기를 다지는 데 저하고 13년을 했어요."
손흥민은 초등학교 2학년부터 자그마치 13년 동안 아버지 손 감독과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손흥민이 아버지와 함께 지옥 같은 훈련을 모두 견뎌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고난의 길을 견딘 그는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젠 '손흥민 아버지' 대신 '인간 손웅정'의 삶에 주력하고 싶은 마음이다. 뒤늦게 찾은 작가로서의 생활도 즐겁다. 내년에는 자신의 독서노트를 토대로 한 신간이 나올 예정이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손흥민에게 잔소리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손 감독, 올 연말과 신년은 영국이 아닌 한국에서 맞을 계획이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2021)에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의 경기를 편히 볼 수 없는 게 운명"이라고 쓴 바 있다. 아들 손흥민의 경기가 있는 날은 소화가 안 돼 식사를 거르는 게 일쑤인 적이 많았다. 이달 초만 해도 무패행진(8승 2무)을 이어가던 토트넘은 최근 3연패 수렁에 빠져 5위까지 떨어졌다. 손 감독의 심정은 어떨까. "흉년이 들 수 있고, 풍년도 들 수 있어요. 흉년 들었다고 침체해 있을 거 아니고 풍년 들었다고 교만 떨 거 아니잖아요. 호황은 좋고 불황은 더 좋다고 했어요. 그게 인생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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