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혐오' 논란 야기한 캐릭터 손 동작
여성 아닌 40대 남성 작가가 콘티 작업
IT 노조 "넥슨, 사과 남발 갈등 부추겨"
넥슨, 20·30대 남성 이용자 눈치 봤나
남성 혐오 논란을 불러일으킨 넥슨의 게임 홍보 영상의 '집게손가락'을 그린 작가가 40대 남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넥슨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도 전에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사실상 게임업계 사상 검증에 편승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논란이 커지면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4~13일 넥슨과 넷마블 등 게임업계 10곳에 대해 고객 응대 노동자 등 보호조치 특별점검에 나선다.
남성 비하 '집게손', 남성 작가가 그렸다
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3일 넥슨코리아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엔젤릭버스터' 홍보 영상에서 집게손 모양이 등장한 장면 콘티를 그린 건 40대 남성 A씨로 파악됐다. 해당 콘티를 검수하고 총괄 감독한 사람은 넥슨의 외주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 소속인 50대 남성이다.
당초 문제가 된 장면을 그린 애니메이터는 스튜디오 뿌리의 한 여성 직원인 B씨로 지목됐다. 홍보 영상을 작업하는 데는 30여 명이 투입됐는데 B씨도 이들 중 1명이었다. B씨가 과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게시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표적이 됐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B씨의 개인 신상정보가 빠르게 확산됐고, B씨에 대한 인신공격 등 무차별 공격이 이뤄졌다. B씨가 퇴사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B씨 측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피해자에 대한 '사이버불링'(온라인 집단 괴롭힘)이 심각해 법적 대응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에도 일부 남성 이용자들의 무단 방문과 촬영이 이어지며 피해를 입고 있다.
넥슨의 사과...젠더 갈등만 부추겨
집게손가락 영상 논란이 젠더 갈등으로 이어진 데는 넥슨의 초기 대응이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넥슨의 이용자 중 일부가 제기한 문제를 진상 규명 없이 수용하면서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얘기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총괄 디렉터는 논란의 영상이 공개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6일 유튜브를 통해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몰래 드러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뿌리와 관련된 조사 결과에 따라 메이플뿐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음 날 넥슨은 해당 영상을 유튜브에서 비공개 처리했다. 스튜디오 뿌리 측도 성급히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에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와 민주노총은 지난달 28일 "남성 혐오 논란에 대해 대형 기업사가 굴복하면서 여성 종사자들의 노동권이 침범됐다"며 규탄 집회를 열었다. 해당 집회 참석자를 대상으로 흉기난동을 하겠다는 예고 글까지 올라오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IT노동조합은 1일 성명을 내고 "(집게손 사태는) 게임업계의 또 하나 커다란 흑역사가 됐다"며 비판했다. IT노조는 "게임산업이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가 커진 것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책임의식은 매우 초라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넥슨은 가장 먼저, 가장 깊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실무근의 문제 제기를 분별없이 받아들여 사과를 남발하고, 특정업체나 노동자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데 급급한 미성숙한 태도는 게임업계, 그중에서도 넥슨의 규모와 영향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게임업계 젊은 남성의 반페미니즘 영향
넥슨의 과도한 대응은 게임업계 주요 이용자인 20·30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CNN방송은 2021년 편의점업체 GS25 홍보포스터에 등장한 집게손가락 이미지로 젠더 갈등이 불거지자 당시 "젊은 남성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반페미니즘'으로 한국 기업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한국에서 극에 달한 '젠더 전쟁'으로 기업들이 제품을 수정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 반페미니즘 세력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분석했다.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장은 "게임업계가 젠더 갈등이 촉발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라며 "하지만 일부 이용자가 전체를 과하게 대표하는 것처럼 해석되고, 게임사는 이들의 의견이 다수인 것처럼 착각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넥슨의 대응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한 게임업계 종사자는 " '집게손' 논란으로 넥슨뿐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모든 영상 검수에 나서고 있다"며 "아무런 의도 없이 들어간 집게손가락도 무슨 의도가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또 다른 누리꾼은 "넥슨도 이용자 눈치 봐야 하니까 일단 머리부터 숙인 거다"라며 "남성 혐오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보다 일단 논란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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