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04년 2월 8일 일본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러시아 태평양함대가 정박한 중국 뤼순항과 제물포에 대한 동시 기습공격에 나섰다. 남하 움직임을 보이는 러시아를 기선 제압해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뤼순항의 러시아 해군은 야간 기습에 나선 일본 구축함을 처음엔 자국 초계함으로 착각할 정도로 우왕좌왕했다. 러시아의 강력한 응전으로 11개월 걸린 뤼순항 점령은 상처뿐인 승리란 평가가 있을 정도로 일본 피해도 컸지만 요충지와 제해권 장악은 러일전쟁 승리의 바탕이 됐다.
□일본이 기만을 동원한 기습공격의 정수를 보여준 건 진주만 습격이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400여 대의 함재기를 싣은 일본 항공모함 6척이 우회를 통한 진주만 접근으로 미 태평양함대를 궤멸 위기에 빠뜨렸다. 미국은 함정 12척, 비행기 188대, 군인 2,300명을 잃었다. 석유금수와 국교단절로 전쟁은 시간문제인 상황에서 미 해군 정보국은 일본 함대의 대규모 이동을 놓쳤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공습 1주일 전 기습공격 가능성에 대한 보고를 받았지만 허를 찔렸다.
□치욕을 맛본 미국이지만 자국의 경우 ‘도조 히데키 옵션'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에 대한 적대행위의 구체적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특정 국가를 기습한 선례가 없다는 것이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은 명예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진주만 습격 당시 일본 총리인 ‘도조 히데키’를 기습공격과 등치시킨 걸 보면 잊지 말자는 것도 깔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01년 9·11테러 때 또 한번 정보실패의 대가로 3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났다.
□우리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효력정지에 9·19 군사합의 파기로 맞선 북한은 3일 “조선반도에서 물리적 격돌과 전쟁은 가능성 여부가 아닌 시점 문제”라고 위협했다. 전쟁을 운운하는 북한의 허세와 협박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한반도 위기 조성이라는 전략적 목적은 언제나 먹힌다. 예측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 방법으로 기습도발이 이뤄질 개연성은 높다. 과거 미국, 러시아나 최근의 이스라엘이 범했던 정보와 정보판단의 실패 이면엔 상대 능력에 대한 과소평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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