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서 우승한 마이 웰란
"여성이고 소수자인 내가 이 나이에 모든 것 극복"
심리전에 탁월... 이민심사관으로 쌓은 경험이 무기
12세 손녀 둔 우승자, 상금은 기후위기 등 지원에
한국 정서 곳곳에... 대규모 '인간 실험' 비판도
#. 인종차별에 무감각했던 1980년대였다. 베트남 출신 이주민을, 그것도 여성을 군은 환영하지 않았다. 미국 해군에서 그는 '왕따'였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난민수용소 출신이었다.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20년을 군에서 버텼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였던 그에게 군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절박한 '밥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해군에 자원입대한 그는 19세 때 엄마가 됐고 부모에게 절연당했다.
이 역경 속에서 꿋꿋하게 자란 이가 456만 달러(60억 원)의 주인공이 됐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에서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은 287번, 마이 웰란(55)이다. 넷플릭스 콘텐츠 관련 소식을 전하는 커뮤니티 투둠에 지난 7일(현지시간) 올라온 우승자 인터뷰에서 그는 "여성이고 소수자인 내가 이 나이에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중년 여성'은 어떻게 우승했을까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는 세계적 신드롬을 낳은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2021) 속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다 현실로 구현한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다. 드라마에서 참가자들은 줄다리기로 힘을 겨루고 오징어 모양이 그려진 운동장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해 마지막 생존자를 가린다. 456명의 참가자 중 고령에 속하는 데다 여성이기도 한 웰란. 주류 미디어가 습관적으로 약자로 분류하는 정체성을 두 개나 가진 그는 어떻게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에서 끝까지 살아남았을까.
웰란은 심리전에 탁월했다. 서바이벌 후반 눈을 가린 상황에서 웰란은 다른 8명의 참가자 중 그를 위기에 몰아넣은 1명의 참가자를 날카로운 직감과 추론으로 단번에 잡아내며 두각을 나타냈다. 2013년부터 미국 국토안보부 이민심사관으로서 수많은 이민자를 상대하며 쌓은 생활의 지혜가 그의 무기였다. 남녀가 함께 경쟁한 이 쇼엔 드라마와 달리 근력으로 승부를 보는 게임은 없었다. 타인의 표정을 읽고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한 웰란은 소수의 참가자와의 '조용한 연대'로 주어진 미션을 하나둘씩 해냈다.
배신 없이 서바이벌은 굴러가지 않는다. 웰란은 그를 엄마처럼 따르던 참가자의 믿음을 결정적 순간에 생존의 제물로 삼았다. 이렇게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과정이 그에게도 곤욕이었다. 웰란은 "어느 날은 상대와 행복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날이 되면 '내가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하루하루가 두려웠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12세 손녀를 둔 그는 상금 일부를 기후위기 극복 기부금 등으로 쓸 계획이다.
"집값 내려고"... 어머니·아들 함께 도전도
10회로 구성된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 촬영은 영국 런던에서 16일 동안 진행됐다. 세계에서 몰린 8만1,000여 명의 지원자 중에 '사연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456명이 뽑혔다. 최고령 지원자는 69세였으며 성소수자, 홀로 아이를 키우는 비혼 부모, 집값을 마련하기 위해 무급휴가를 낸 보호관찰관 등이 드라마처럼 철제 침대에서 먹고 자며 게임에 참여했다. 한국인 참가자(375번·조엘)도 있었다.
축구장 크기의 대형 스튜디오에서 참가자들은 한국말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면 4m 높이의 여자아이 모양 로봇 인형 '영희'의 눈을 피해 뛰었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결승선으로 돌진했고, 흙바닥에 주저앉아 드라마 속 456번(이정재)처럼 사력을 다해 달고나를 핥았다. 이 쇼엔 한국적 정서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백인 여성의 입에선 "(죽을 '사(死)'자를 암시하는) 4번은 불길하다"는 말이 나오고, 다양한 인종의 참가자들은 손을 모은 뒤 한국말로 "깐부"라고 외친다. 스티븐 예모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 총괄 프로듀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이 서바이벌에 도전했는데 '레드 라이트, 그린 라이트'('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아들이 먼저 결승선에 들어온 뒤 초조하게 어머니를 기다리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선 공중에 매달린 '유리 다리'에서 미션에 실패하면 참가자가 떨어져 죽지만,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에선 아무도 죽지 않는다. 5m 높이의 다리에서 참가자가 지면 스턴트맨이 대신 떨어지는 방식으로 촬영됐다. 아몬 카딤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 수석 개발 셰프는 "달고나가 쉽게 부서지거나 녹지 않게 만들기 위해 19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며 "게임 하루 전에 수천 개의 달고나를 만들어 부서지지 않게 촬영장으로 옮기는 게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쇼는 영어·비영어권 통틀어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3일까지 2주 연속 넷플릭스 TV 시리즈 부문에서 최다 시청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균형적 성비 위해" 공존 실험 속 드러난 '비인간성'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엔 우리 사회의 빛과 그림자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부 참가자는 성비 균형을 위해 다음 미션 진출 명단에 여성 참가자 이름을 올리기도 하지만 생존에 예민해진 탓에 숙소에선 혐오도 들끓는다. "역사상 가장 죄책감이 강한 TV쇼(영국 가디언)"라거나 "자본주의가 경쟁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구덩이에 빠뜨리는지를 비평하지 않는다. 경쟁을 착취가 아닌 기회로 간주한다(미국 뉴욕타임스)"는 비판도 제기됐다. 자본주의 벼랑 끝에 몰려 돈을 벌기 위해 서바이벌에 뛰어든 참가자들의 인간성 실종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준 탓이다. 대규모 '인간 실험'을 연상케 한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는 촬영 과정에서도 윤리 문제에 휘말렸다. 일부 참가자들은 촬영 중 저체온증을 겪고 신경 손상을 입었다면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제작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 관계자는 "우리는 참가자들의 복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며 "심각한 부상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충청도에서 시작된 '오겜' 시즌2
한국에선 내년 드라마 시즌2 공개를 목표로 충청도 한 스튜디오 등에서 촬영이 바쁘게 이뤄지고 있다. 황동혁 '오징어게임' 시리즈 감독은 "새로운 게임과 캐릭터와 함께 펼쳐질 더욱 깊어진 이야기와 메시지를 기대해주셔도 좋다"며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드라마 시즌2엔 이정재와 이병헌, 공유 등 시즌1에 출연했던 주역을 비롯해 강하늘, 임시완, 박규영, 박성훈, 양동근, 강애심, 이진욱, 빅뱅 출신 최승현 등이 새롭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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