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총·지나치기... "저상버스 있어도 못 타"
대전서 예약시스템 실험, 이용률 20배↑
"장애인과 非장애인 장벽 허무는 효과도"
"다음 정류장에서 리프트가 사용될 예정입니다. 통로 확보 부탁드립니다."
7일 오후 대전 시내를 운행하던 한 저상버스에서 생소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버스기사 단말기에도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예정입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이윽고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가 인도와의 간격을 조정한 뒤 리프트를 가동하자, 이용자 유금순(54)씨가 탑승했다. 기사는 휠체어 전용석 근처에 앉아 있던 승객들한테 양해도 구했다. 탑승 소요 시간은 2분. 빠른 이동이 생명인 대중교통 특성을 감안할 때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누구 하나 얼굴을 찡그리는 승객은 없었다. 이모(20)씨는 "미리 안내방송이 나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상버스 보급 확대는 이동권 문제와 관련해 장애인들이 가장 원하는 정책사업이다. 정부도 현재 30.6%에 불과한 전국 저상 시내버스 도입률을 2026년까지 62.0%로 두 배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양만 늘린다고 능사는 아니다. 설비는 있는데 수요자가 사용을 주저한다면 있으나마나다. 언제 저상버스가 도착할지 알 수 없고, 시간 지체로 괜히 상처만 받을까 봐 이용을 외면하기 일쑤다. 유씨는 "버스를 기다려도 인도와 너무 멀리 정차해 리프트 설치가 어려울 때가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려 승객들의 곱지 않은 눈초리를 견디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런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7월부터 대전에서 진행 중인 실험이 있다. SK행복나눔재단과 위즈온협동조합은 대전시와 손을 잡고 휠체어 승차 예약 애플리케이션(앱) '위버스'를 도입했다.
발상은 간단했다. "탑승 사실을 미리 알리면 되는 거 아냐?" 위버스 앱은 사용자가 출발·도착지를 설정하면 탑승 가능한 저상버스를 확인할 수 있다. 탑승 예약까지 끝낸 뒤에는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버스운행 기사에게 전송된다. 정류장 도착 전엔 "리프트가 사용될 예정"이라는 안내방송도 나와 다른 승객들이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 SK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팀 김선홍 매니저는 "기사는 물리적 준비를, 승객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반응도 좋다. 대전시 저상버스 398대에 위버스 시스템이 도입됐는데, 7~9월 석 달간 278명이 앱을 내려받았다. 실제 탑승 건수도 262회에 이른다. 작년 한 해 휠체어 탑승이 고작 13번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최근 집계된 지난달까지의 누적 탑승 횟수도 405회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증가세가 확인되고 있다.
성과가 그저 숫자만은 아니다. 위버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마음의 벽을 허무는 구심점 역할도 하고 있다. 이날 버스를 이용한 최모(71)씨는 "나도 다리가 아파 버스에 천천히 탈 때마다 눈치가 보이는데, 장애인들은 오죽하겠느냐"며 "사전 방송이 나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경익운수 소속 기사 박기호(53)씨는 "앱 덕에 '위치를 고려해 정차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면서 "휠체어 승객을 태운 경험을 말하는 동료도 늘었다"고 미소 지었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예약을 해도 시간에 쫓긴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치는 일이 빈번하고, 안내방송을 해도 아직 불평을 쏟아내는 승객이 더러 있다. 위버스는 장애인 승객이 더 이상 불편한 존재가 아닌 사회를 목표로 앱을 계속 보완할 계획이다. 오영진 위즈온 이사는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이 돼버렸다"며 "앱을 통한 휠체어 버스 이용이 늘수록 갈등도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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