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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직장인’ 절반이 근속 5년 미만… 갑질ㆍ과로에 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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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직장인’ 절반이 근속 5년 미만… 갑질ㆍ과로에 무력

입력
2023.12.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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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 개최
산재 자살 업무상 질병 판정서 85건 분석
자살 원인 '직장 내 괴롭힘'이 29.4%로 1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한 회사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김현모(가명)씨는 원래 8명이 투입되기로 한 프로젝트를 사실상 혼자 떠맡았다. 과도한 업무 때문에 수면 시간은 하루 2, 3시간에 그쳤고, 프로젝트 진행이 늦어지며 발주사의 거센 항의에 시달렸다. 이듬해 1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는 사망 20분 전까지 업무 관련 통화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1년 사무ㆍ회계 관리직으로 입사한 이상수(가명)씨는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 대표와 대표 아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가족 내 불화 책임을 이씨에게 전가하는 등 갑질도 서슴지 않았다. 공포감에 시달리며 회사를 다닌 이씨는 입사 4개월 만에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13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자살 산업재해 현황 토론회’에서 소개된 사례들이다. 지난해 회사를 다니다 목숨을 끊은 직장인 절반 가까이가 입사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자살 산재 업무상 질병판정서’ 85건(승인 39건ㆍ불승인 46건)을 분석한 결과다.

분석 결과, 자살한 직장인 48%(41명)가 근속연수 5년 미만이었고, 이어 근속연수 5~10년 18%(15건), 10년 이상 34%(29건)였다. 자살을 선택한 이유로는 폭행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이 29.4%(25건)로 가장 컸고, 과로 15.2%(13건), 징계ㆍ인사처분 14.1%(12건) 순으로 나타났다. 저연차 직장인일수록 회사 내 입지가 취약해 직장 내 갑질과 과중한 업무 요구에 무력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근로복지공단의 ‘자살 산재’ 승인율은 2018년 80%, 2019년 65%, 2020년 70%, 2021년 56%로 하락세다. ‘업무와 자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게 주요 불승인 이유인데, 이미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속 정여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근로복지공단 산하 질병판정위원회 위원들의 전공과 배경, 세대, 성별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의 범주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단지 성격 나쁜 상사를 잘못 만난 ‘개인의 불운’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조직 분위기, 업무 불안정성, 리더십 스타일 등 기업의 조직적 요인도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신고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 신고를 하면 오히려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고, 신고를 하더라도 바뀌는 것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배나은 직장갑질119 활동가는 “어지간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 괴롭힘 피해자들이 신고를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절망과 죽음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 인정 범위를 넓히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권남표 하라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고인들은 생전에 고용노동부가 괴롭힘을 인정하고 시정 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사업주 조사를 더 엄격ㆍ신속하게 하고, 괴롭힘 인정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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