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전쟁: 가족의 배신]
<1>다사 시대와 ’마지막 로또‘
사망자 늘어나자 상속 분쟁도 급증
자산 증식 '마지막 로또' 현실 반영
재벌가 아닌 평범한 이웃의 문제로
아파트 안 넘겨주자 분노한 아들이
추석날 망치로 부모와 아내 내리쳐
모친은 아들 항소심·감형 위해 노력
"가족 갈등 위험 수위, 해법 찾아야"
편집자주
상속 분쟁, 더는 남 얘기가 아닙니다. 사망자는 늘어나고, 가족 형태도 복잡해졌습니다. 부모님 사망 후 부동산에 욕심 내는 형제도 눈에 띕니다. 저성장 추세까지 고착화되면서 상속은 '이 시대 마지막 로또'가 됐습니다. 이래도 가족과 안 다툴 자신 있습니까. 죽은 자도 산 자도 걱정이 없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국일보가 취재했습니다.
다사(多死) 시대다. 2022년 한국인 사망자 수는 37만2,939명으로 10년 전보다 10만 명 넘게 증가했다. 많이 죽고 있지만, 다사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대책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노인 돌봄 시설과 치매 케어센터 등 인프라도 부족하지만,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속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특히 부족하다.
실제로 가족 간 상속 분쟁으로 법원을 찾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7일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원행정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속재산 분할 처분 소송’은 2022년 2,776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3년(601건)보다 무려 4배 이상 증가했다. 상속 관련 사건(상속포기·상속한정승인·상속기타)도 5만1,626건(2022년)에 달해, 2013년(3만5,030건)보다 47.4% 늘어났다. 유언에 관한 사건 역시 66.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혼 사건이 29.3%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상속 분쟁이 급증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관련이 깊다.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급등했고 1인 가구와 재혼 가정 등 가족 형태는 복잡해졌지만, 상속 관련 제도는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장남에게 물려줬던 땅에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땅값이 뛰자 형제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재혼 후 사망한 아버지의 재산을 두고 새어머니와 자식들이 벌이는 상속 분쟁은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상속 전문가들은 저성장이 우리 사회에 고착화되면 앞으로 상속 분쟁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근로 소득만으로 자산 증식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상속이 부를 늘리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자 이 시대의 '마지막 로또'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면서 그동안 쉬쉬했던 '상속 드라마'의 이면을 전국을 돌면서 집중 취재했다. 현실에서 맞닥뜨린 상속 분쟁은 막장 드라마나 전쟁 영화 못지않게 비정하고 형태도 다양했다. 재벌가도 아닌 평범한 이웃들이 돈 문제로 가족들과 씨름했고, 가족을 등치고 있었다. 상속을 가족 간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공론의 장에서 해법을 모색할 때가 됐다고 판단한 이유다. 불편하고 슬프지만 익숙한 상속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파트 증여가 뭐길래…존속살해미수의 비극
“화내지 마라. 원한을 오래 품지 말라. 사랑을 버리지 말라.”
박정자(72·가명)씨는 지난해 11월 28일 집으로 찾아간 취재진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넸다. 존속살해미수 및 살인미수 혐의로 수감돼 있는 아들에게 전달하려던 편지였다. A4용지 앞뒤로 빼곡히 손글씨가 적힌 편지에는 아들을 향한 박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종교(천주교)에 의지해 속죄하고 마음의 원한을 풀라고 했다. 박씨는 힌두교 경전을 인용하며 “좋은 말과 글들을 읽어보면 마음도 깨끗해지고 흐뭇해 기분이 좋고 생기가 나더라. 마음을 가다듬고 기쁘게 주님 안에서 누리며 사세요”라고 썼다.
일주일 전 방문했을 때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던 박씨가 편지를 공개한 이유는 분명했다. 재판부가 편지를 보고 아들을 선처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박씨는 이날 취재진에게 아들을 모두 용서했다고 말했다. 비록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지만 "참말로 착하다"며 마음에 온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아들을 소개했다.
추석 당일 새벽, 아들은 부모를 망치로 쳤다
"(모친이) 아파트 명의 이전을 해주지 않을 듯한 언동을 보이자 (아들이) 격분해 큰소리로 욕설을 하며 망치로 모친의 머리 부위를 수회 내리쳤다.”
검찰이 지난해 10월 박씨의 아들 김지훈(48·가명)씨를 구속기소하며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 내용이다. 끔찍한 패륜 범죄는 지난해 9월 29일 추석 당일 새벽에 발생했다. 김씨는 연휴 첫날인 9월 28일 오전 8시 자신의 집에서 아내와 함께 승용차를 끌고 박씨 집으로 향했다. 명절에는 으레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지만, 김씨 부부는 따로 저녁을 먹고 오후 8시쯤 박씨 집에 도착했다. 김씨는 곧바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고, 다음 날 0시 50분쯤 일어나 거실에서 모친과 마주쳤다.
무자비한 폭력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김씨는 집에서 준비한 길이 40㎝·지름 3㎝ 크기의 망치로 모친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쳤다. 비명을 듣고 안방에 있던 김씨의 아내가 뛰어나와 말리자, 아내까지 망치로 때렸다. 김씨의 부친이 급히 나와 CD진열대를 휘두르며 김씨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아들이 휘두른 망치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김씨는 "다 같이 죽자"며 부엌에서 식칼을 꺼냈다. 유일하게 의식이 있던 김씨의 아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남편을 말렸다. 김씨가 지친 틈을 타 아내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즉각 코드제로(112 신고 중 최고 단계)를 발령해 김씨를 현행범 체포했다. 112 신고 당시 김씨의 아내가 내뱉은 첫마디는 "살려주세요"였다. 다행히 사망한 가족은 없었다. 모친 박씨는 뇌진탕으로 중환자실로 이송됐고, 부친과 김씨 아내도 크게 다쳤다.
박씨는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덤덤하게 회상했다. 망치로 머리를 맞고 나서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패륜 범죄자인 아들을 탓하는 대신, 아들 하나라고 오냐오냐 키운 자신을 탓했다. 박씨는 몸 상태를 묻는 취재진에게 "괜찮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내 회복력에) 깜짝 놀랐다. 내가 가장 많이 다쳐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 제일 먼저 나왔다. 자기 사는 대로 운이 풀리는 것 같다."
아들은 왜 부모를 원망했을까
“아들이 밉지 않으세요?”
취재진이 지난달 19일 박씨를 세 번째 만났을 때 묻자, 박씨는 "생각하면 밉다"면서도 금세 말을 바꿨다. 불만을 마음에 꼭 담아두는 아들의 소심한 성격을 탓할 뿐이었다. 이날은 아들 김씨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집 앞에서 만난 박씨는 아들의 범행 동기에 대해 털어놨다. 생각보다 아들의 형량이 가벼워 희망을 봤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박씨는 "그 아파트를 자꾸 탐내는 (아들 부부의) 잔상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아파트 소유권을 두고 가족 간 갈등이 커지면서 범행이 촉발됐다는 의미였다. 김씨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소유권을 두고 모친과 갈등을 빚었다. 경기 고양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박씨가 2017년 5월 2억3000여만 원에 구입했다. 아들이 2011년 결혼하자 모친이 얻어준 아파트였다. 현재 시세는 3억 원대로 한때 4억3000만 원을 찍기도 했다.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은행에서 1억 원을 빌렸는데, 월 이자 50만 원은 박씨가 부담했다.
김씨는 모친이 아파트를 매입할 때 자신 명의로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무너졌고, 불만은 점점 커졌다. 박씨도 아들에게 아파트를 넘겨줄까 고민했지만, 남편을 비롯한 온 가족이 말렸다. 아들의 '화려한 전적' 때문이다. 박씨에 따르면 김씨는 결혼하기 전 모친으로부터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증여받았지만 날려 먹었다고 한다.
공소장에는 가족에 대한 김씨의 불만이 자세히 적혀있다. 그는 자신을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가족들을 원망했다. 김씨는 결혼 전 부모에게 빵집을 차릴 돈을 요구했지만 지원받지 못했다. 특히 부모가 자신은 도와주지 않고, 누나 2명만 지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혁신도시 들어서며 부동산 가치 급등…불화 씨앗 됐나
지난해 4월 김씨는 12년간 다녔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되고 재취업에 실패하자 심리적 압박이 커졌다. 아내로부터 경제 활동을 하라는 잔소리를 듣자 불만을 품었다. 부모가 땅부자인데도 3억 원대 아파트를 자신에게 넘겨주지 않자 불만은 더욱 커졌다.
실제로 박씨가 살던 시골 마을은 2007년 혁신도시로 지정되면서 일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정부는 기존 땅값의 3배를 주고 땅을 사들였고, 개발 호재가 들릴 때마다 땅값은 들썩였다. 박씨는 혁신도시 인근에 본인 명의로 1만여 평(3만3,000㎡)의 과수원을 소유하고 있다. 혁신도시 부지와 500m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데다, 도시를 모두 내려다볼 수 있어 '명당'으로 꼽혔다. 면사무소 인근에 남편 명의 토지 수백 평까지 있어, 현재 시세는 모두 100억 원대로 추정된다.
박씨는 현금 부자가 될 뻔했다. 고급 주택단지를 지으려는 건축업자와 70억여 원에 과수원 부지 매매 계약을 체결했지만 무산됐다. 과수원 주변의 한 부동산업자는 "인근에 대규모 복합 상가가 들어설 예정이라 건축업자들이 주민들에게 땅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1차 공판서 검찰 7년 구형…아들 “혐의 인정하고 반성”
김씨는 법정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지난해 11월 21일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은 "죄질이 좋지 않다"며 김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범행에 사용한 망치를 집에서 챙겨갔다며 계획범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모친에게 아파트를 증여해줄 것을 요구하고 대화가 잘 되지 않을 경우 부모를 살해할 것을 마음먹었다"며 범행 배경을 설명했다.
김씨는 재판부에 4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피해자인 모친을 비롯해 부친과 아내도 합의서를 제출했고, 처벌불원서도 냈다. 김씨는 다만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씨 변호인은 법정에서 "범행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평소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았고, 화가 나 있던 차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또 "부친에게 학대당한 기억이 있고, 공황장애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으니 참작해 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최후진술에서 짧게 울먹이며 "잘못했다. 인정한다. 죄송하다"고 밝혔다.
결국 3년 6개월 실형 선고…모친 “상해 혐의로 집행유예 받아야”
법원은 12월 19일 김씨에게 검찰 구형량의 절반인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범행이 모두 미수에 그쳤고, 김씨가 계획적으로 피해자들을 살해하려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범행의 반인륜적 성격, 피해자들이 입은 상해 정도를 비춰보면 죄책이 무겁다"면서도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인 박씨는 아들의 항소심 재판을 도울 거라고 했다. 아들의 형량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낮추기 위해서다. 자신은 별로 다치지 않았으니 존속살해미수 혐의 대신 형량이 낮은 상해 혐의로 처벌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에 대비해 이미 아들 변호사까지 선임해줬다. 그러면서 시기가 문제일 뿐 고양 아파트도 당연히 아들에게 줄 거라고 했다.
상속 문제로 목숨까지 잃을 뻔했지만 아들에게 다시 손을 내민 이유는 무엇일까. 박씨에게 상속은 어떤 의미일까. 모친은 아들을 용서한다고 했지만, 상속은 박씨 가족에게 다시 떠올리기 싫은 단어로 각인돼 버렸다.
“과수원 그거 팔았다 캐봤자 큰딸 주고 싶고, 작은딸 주고 싶고, 아들 주고 싶고 그래. 이래 잔치 한 번 벌리고 나면 없어. 빚 갚고 하면 없어. 어제도 (수감된) 아들 보고 오면서 이가 안 좋다길래 (영치금으로) 60만 원 붙여줬지. 나는 (아들한테 망치로 맞은 머리 부위) MRI 찍고 봐도 아주 (건강이) 괜찮은데, (아들을 굳이 감옥에) 묶어 놓을 필요가 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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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사 시대와 '마지막 로또'
<2>남보다 못한 혈육 저버린 인륜
<3>어느 날 삼촌 빚이 도착했다
<4>망자도 산 자도 품위 있으려면
<5>상속 전문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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