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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복받은 63년생"...환갑잔치로 전국서 강연하고 과학책도 낸 '아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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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복받은 63년생"...환갑잔치로 전국서 강연하고 과학책도 낸 '아재'들

입력
2023.12.19 16:30
수정
2023.12.19 16:55
22면
0 0

1년 내내 22회 작은도서관과 동네 서점 강연 투어
후배 과학자들 참여한 선물 같은 책 출간까지
"복 받은 63년생" 이권우·이명현·이정모의 특별한 환갑

20년 가까이 진한 우정을 나눠온 세 친구와 후배는 가족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미소가 닮았다. 환갑을 맞아 국내 작은도서관과 동네책방에 '전국순회 강연'을 다닌 '환갑삼이'가 이번에는 과학교양 시리즈 '33한 프로젝트'를 출간했다. 오른쪽부터 '환갑삼이'인 이명현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정모 펭귄 각종과학관장, 이권우 도서평론가와 이번 시리즈를 기획한 강양구 과학전문기자. 윤서영 인턴기자

20년 가까이 진한 우정을 나눠온 세 친구와 후배는 가족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미소가 닮았다. 환갑을 맞아 국내 작은도서관과 동네책방에 '전국순회 강연'을 다닌 '환갑삼이'가 이번에는 과학교양 시리즈 '33한 프로젝트'를 출간했다. 오른쪽부터 '환갑삼이'인 이명현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정모 펭귄 각종과학관장, 이권우 도서평론가와 이번 시리즈를 기획한 강양구 과학전문기자. 윤서영 인턴기자

"전 세계 1963년생 중에 이렇게 복 받은 사람들이 없을 거예요."(이권우)

올 한 해 동안 어느 슈퍼스타보다 활발하게 전국 투어를 다닌 이들이 있다. 자신들의 환갑 맞이를 명분으로 말이다. 1963년생 동갑이자 20년 지기인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명현 천문학자, 이정모 펭귄 각종과학관장이 그 주인공. 같은 성씨에 착안해 '환갑삼이'(환갑을 맞은 이씨 친구 3명)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이들은 지난 1월 서울을 시작으로 경남 통영, 충남 서산, 강원 춘천, 제주, 전남 곡성 등 전국의 작은도서관과 동네책방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다. 연말에 예정된 것까지 하면 1년간 강연을 22번 하는 셈이다.

"세상에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기회를 도서관, 서점과 책을 통해 얻었어요. 책을 쓰고, 토크쇼나 강연을 하고, 사람을 만났죠. 서점과 책방이 없었다면 제가 국립과천과학관의 관장씩이나 될 수 있었을까 싶어요."(이정모)

책, 서점, 도서관. 이 세 가지는 이들이 무탈히 환갑을 맞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평생 책과 도서관 문화를 가꾸는 데 헌신한 이권우 평론가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정모 관장은 여러 저술을 기반으로 대중과 과학 사이를 메우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자리매김했으며, 이명현 박사는 시민과 과학을 잇는 매개로서의 과학책방 '갈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들은 일평생 서점과 도서관으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 '환갑삼이 전국투어 강연'을 다니면서도 교통비·숙박비를 제외하고는 비용을 받지 않았다.

이들의 부지런함은 끝나지 않았다. 새해를 10일쯤 앞두고 책을 냈다. 무려 세 권이다. 전국투어가 스스로 벌인 잔치였다면, 책 출간은 이들 3명에게 배우고 받은 게 많다는 3명의 후배가 힘을 보태 추진했다. 이름하여 '33한 프로젝트'다. 신간 출간을 계기로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이들을 만났다. 프로젝트를 기획·정리한 강양구 과학전문기자도 함께 자리했다.

올해 '환갑삼이 전국투어'를 다니며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이처럼 끈끈한 20년 우정에도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다고. 이들은 꾸준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로 '적당한 거리'를 꼽았다. 한동안은 말을 높이기도 하면서 서로를 존중했고, 전국의 서점과 도서관을 다니면서도 숙소의 방을 따로 썼다고. 윤서영 인턴기자

올해 '환갑삼이 전국투어'를 다니며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이처럼 끈끈한 20년 우정에도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다고. 이들은 꾸준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로 '적당한 거리'를 꼽았다. 한동안은 말을 높이기도 하면서 서로를 존중했고, 전국의 서점과 도서관을 다니면서도 숙소의 방을 따로 썼다고. 윤서영 인턴기자


환갑 맞은 세 선배를 향한 후배 과학자들의 선물

"책으로 특별한 환갑 이벤트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시작은 충동적이었다. 지난 1월 환갑연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강 기자가 술김에 아이디어를 냈다. '환갑삼이'와 각별한 후배 과학자인 김상욱 경희대 교수, 장대익 가천대 교수,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를 섭외해 특정한 주제를 놓고 과학과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눈 대화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3명은 한국에서 가장 바쁘다는 이른바 '셀럽 과학자'들. 반신반의하며 강 기자가 제안서를 보냈고 3명 모두 흔쾌히 승낙했다. 순식간에 출판사 3곳이 의기투합했고 '살아 보니, 시간'(생각의힘 발행) '살아 보니, 지능'(어크로스 발행) '살아 보니, 진화'(사이언스북스 발행)가 약 1년 만에 출간됐다.

"우리 시대에는 어른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이분들은 정말 멋진 선배이자 어른이에요. 한국에도 이런 멋진 선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런 멋진 우정을 20년 가까이 유지하며 공동의 성과를 내놓은 노하우가 있을 거란 말이죠. '나도 저런 우정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용기를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강양구)

"가는 곳마다 환갑 케이크를 챙겨주시며 잔치를 얼마나 했던지 올해 2㎏이 쪄버렸어요!" 이권우(왼쪽)가 말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가는 곳마다 환갑 케이크를 챙겨주시며 잔치를 얼마나 했던지 올해 2㎏이 쪄버렸어요!" 이권우(왼쪽)가 말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과학보다는 '살아 보니'에 방점을

서지정보상 분류는 '과학'이지만 책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 각자의 전공 분야에 맞춰 물리학자 김상욱은 '시간'을, 뇌과학자 정재승은 '지능'을, 진화생물학자 장대익은 '진화'를 주제로 환갑삼이 3명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데, 그 내용이 결코 과학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정재승 교수는 인생을 좀 더 살아본 선배들에게 '지능'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책을 많이 읽으면 노년이 달라질까? 나이가 들면 두뇌 활동에 어떤 변화를 줄까?" 대화는 '나이가 들면 타인에 대한 포용성이 늘어나는가' 하는 질문으로 갔다가 세대론에 대한 토론으로 점프한다. '환갑삼이'는 86세대로서의 반성과 성찰을 내비치는 한편, 공공성을 잃은 사회를 개탄한다. 또 어떻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나름의 지혜도 설파한다. 책이 과학교양서의 탈을 쓴 사회비평서이자 인문교양서이면서 삶의 지혜를 담은 잠언처럼 읽히는 이유다.

누구보다 성대하게 2023년을 베풀고 또 돌려받은 이들에게 올해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번 프로젝트는) 차근차근 기획하고 실행된 게 아니라, 일은 벌여져 있었고 거기에 의미가 덧붙었을 뿐이에요.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이명현)

"'친구 잘 사귀어라! 복 받는다!'고 하고 싶어요. 친구들 덕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책도 나오고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아요."(이권우)

"60년 살면서 뭘 이뤘는지 잘 몰랐어요. 올 초 퇴직으로 12년간의 화려한 과학관장 시절이 끝났으니 침잠되어 우울할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1년 내내 명랑하게 보냈어요.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재밌게 살려고요."(이정모)


'33한 프로젝트'는 세 출판사에서 공동기획으로 출간됐다. 왼쪽부터 '살아 보니, 시간' '살아 보니, 지능' '살아 보니, 진화' 표지 사진. 출판사 제공

'33한 프로젝트'는 세 출판사에서 공동기획으로 출간됐다. 왼쪽부터 '살아 보니, 시간' '살아 보니, 지능' '살아 보니, 진화' 표지 사진. 출판사 제공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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