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자 근로 여건 개선 지침' 합의
첫 법적 근거... 플랫폼 기업 '고용주'로 간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우버 차량 탑승 표지판. AF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음식배달, 차량호출 애플리케이션(앱) 등의 통제하에서 일하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도 근로복지 혜택을 비롯한 각종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처음으로 마련했다. 근무 형태에 따라 플랫폼 기업을 '고용주'로, 플랫폼 노동자는 지금처럼 자영업자가 아니라 '피고용인'으로 각각 간주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번 지침이 최종 확정돼 시행되면 EU 역내에서 최소 550만 명가량이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13일(현지시간) 유럽의회, EU 27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이사회와 3자 협상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 개선 지침’을 최종 타결했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서 집행위는 “이 지침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노동권과 사회적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지침이 공식 발효되면 EU 회원국들은 이를 2년 안에 국내법에도 반영해 시행해야 한다.
이날 공개된 새 지침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이 5개 조건 중 2개 이상에 해당하면 ‘고용주’로 규정된다. 해당 지표는 △급여 상한 △성과 감독 △근무시간 관리 △업무 분장 결정 △복장·고객 응대 등 행위 규정이다. 고용주가 된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적용, 유급 휴가, 연금, 실업·질병 수당 등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다.
플랫폼 노동자의 업무 평가를 투명화하고 사생활을 보호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특히 계정 정지나 해고 같은 문제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감독하도록 했다. 노동자들의 사적 대화, 개인정보 등에 대한 데이터 수집은 금지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디지털 기술 발달 속에 규모는 갈수록 커지는데도, 노동권·인권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플랫폼 노동자들의 처우도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집행위는 “현재까지 EU 내 디지털 노동 플랫폼의 90% 이상이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분류해 왔다”며 “2021년 기준 역내 플랫폼 노동자 약 2,800만 명 중 550만 명이 잘못 분류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 지위 인정 여부는 전 세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주제다. 예컨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우버 기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법안(AB-5)이 2020년 1월 주의회를 통과했으나, 이를 부정하는 반대 법안이 발의되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도 아직까지 플랫폼 노동자의 법적 지위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다만 관련법 개정에 따라 지난해부터 고용보험, 올해 7월부터는 산재보험 가입이 각각 가능해진 상태다.
그럼에도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추세다. 영국 대법원은 2021년 차량공유 업체 우버 운전자에 대해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무 제공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요금, 승객 수락 등 서비스 제공 방식을 우버가 모두 통제한다는 이유였다. 프랑스 법원도 유럽 음식배달 플랫폼 딜리버루의 배달원을 아예 ‘임금근로자’로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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