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짜뉴스와 정치의 공생
"화동 입맞춤은 성적 학대" 주장
"尹 발언은 비속어 아닌 '사람들'"
진실 관심 없는 '개소리' 만연
편집자주
총선의 해인 2024년 정치 진영간 적개심을 자극하는 허위정보나 아니면 말고식 의혹제기 등이 더욱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이는 정치권이 대중 동원을 위해 손쉽게 활용하는 선동 수단이지만 지지자들간 증오와 혐오감을 증폭시켜 정치 자체를 질식시킬 수 밖에 없다. 이런 가짜뉴스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안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동의를 하지 않는 경우 아이의 입술이나 신체의 다른 부분에 키스하는 것은 성적 학대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미국 순방 도착 환영행사에서 꽃을 선물한 화동의 볼에 입을 맞춘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초선 장경태 의원은 이렇게 지적했다. 발언이 알려지자 온라인 공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국내외 정상들이 어린아이에게 입을 맞춘 과거 사진이 확산됐다. "이제 정상회담 의전상 관례까지 트집을 잡는다"는 지적이 거세지면서 민주당 내에서도 "절제된 비판이 필요하다"(전재수 의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장 의원은 이후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텍사스주, 버지니아주, 테네시주 등에서 아동에 대한 신체 접촉에 대해 엄격히 금하고 있다"며 "우리 법원에서도 손등에 뽀뽀만 해도 강제 추행으로 벌금형 판결이 있었다"고 기존 주장을 이어갔다. 다만 장 의원이 "심각한 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했던 전망은 빗나갔다.
한국 정치의 퇴행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퇴행을 부추기는 가장 큰 문제로 '진실을 외면한' 정치인들의 발언이 꼽힌다. 특히 정치의 양극화와 팬덤을 등에 업고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노골적 거짓말은 물론 △단순 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허위 정보 △다른 사람의 의도를 왜곡한 발언 △사실에 가깝지만 과장된 말 △거짓에 가깝지만 진실이 조금 섞인 발언 등이 온·오프라인 담론을 뒤덮는 상황이다.
2023년 1월 1일~12월 17일 플랫폼 'SNU 팩트체크'에 등록된 정치 분야 팩트체크 대상은 201건에 달한다. 이 중 '전혀 사실 아님' 혹은 '대체로 사실 아님' 판정은 103건(51.2%)으로 절반을 넘었다.
여야 가리지 않는 '개소리꾼'의 등장
해리 G. 프랭크퍼트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2005년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에서 진실에 신경 쓰지 않고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이들을 '개소리꾼'으로 칭했다. 그는 '확실하고 인식 가능한 사실이 실제로 있다'고 가정하는 거짓말쟁이와 달리 개소리꾼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유리한 발언을 할 뿐 사실인지 여부는 개의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치인들도 이런 행태를 닮아가고 있다. '윤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30명가량이 청담동 고급 술집에서 만났다'는 내용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대표적이다.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의혹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만약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질문을 할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사실이 아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다. 얼마 전 북콘서트에서는 "한 번이라도 골을 넣어보려고 하다 보면 헛발질도 하지 않나"라며 "이쁘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지지자들 앞에서 자신의 발언을 합리화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소리꾼을 자임하는 건 여당 의원도 다르지 않다. 2022년 9월 미국 순방에 나선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발언한 장면이 방송 카메라에 잡혀 논란이 일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OOO 부분이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었다"고 적극 반박했지만, '이 XX' 부분에 대해서는 "거친 표현에 대해 느끼는 국민들의 우려를 잘 듣고 알고 있다"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런데도 박수영 의원을 비롯한 친윤석열계 의원들은 페이스북에서 '이 XX'가 비속어가 아닌 "이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입장과 온도 차가 상당한 이들의 주장을 놓고 윤 대통령을 향한 '과잉 충성'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정부까지 가세...언론의 역할 더 중요해져
이런 현상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는 정부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8월 홍범도 흉상 이전 문제로 갈등이 고조되자 국방부는 공산당과 연결시켜 홍범도 장군의 과거 이력을 나열하며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적절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이에 취재진이 △레닌 공산당과 스탈린 공산당은 다르다 △1919년 빨치산과 김일성, 스탈린은 아무 관계가 없다 등 질문을 퍼붓자 국방부 대변인은 "여러 가지 의견을 가질 수는 있는데, 저희는 저희 입장을 정리해 드린 것으로 이해해 달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국방부가 거론한 홍범도 장군의 이력 일부는 사실에 부합하지만, 논란의 핵심과는 동떨어져 있는데도 아랑곳없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우리는 우리말만 하겠다며 고집을 피운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이 같은 '개소리'가 과거에 비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 이유를 미디어 환경 변화에서 찾는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뉴미디어가 출현하면서 개소리가 더 넓고 빠르게 퍼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언론의 책임이 큰 이유다. 진위 여부를 따지는 단순 검증을 넘어 허위 정보의 발화자를 폭로하고 이 정보가 가짜라는 점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일 "최근에는 대형 언론사들도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검증 없이 '따옴표'만으로 이뤄진 기사를 쏟아내는데, 독자들은 이를 사실로 인식하기 쉽다"며 "더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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