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소설집) '반에 반의 반’에 실린 소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쓴 소설은 남극으로 가는 길에 썼는데요. 빙하를 깨며 조금씩 나아가다 이윽고 눈앞에 남극대륙이 나타났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그 벅차오름이 남극 때문이었는지,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마무리했기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어떤 예감이 들었달까요. 막연하지만 확실하게요. '다시 쓸 수 있겠다, 다시 살 수 있겠다'는...”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인 천운영 작가는 18일 서울 중구 연세세브란스빌딩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에 반의 반’은 할머니 세대로부터 엄마, 딸 세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몸에 '다정한 무늬'로 쌓인 역사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소설집이다. 심사위원들은 “한 사람의 삶이 다음 사람의 삶으로 이어질 때 생래적으로 품고 있는 이야기로부터 소설을 저절로 일으킬 줄 아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2000년 등단한 천 작가는 10년 만에 낸 소설집으로 상을 받은 것에 대해 “문학상 시상식이라면 필연 문학관이나 세계관을 피력해야겠지만, 그러지 않겠다"면서 "그저 쓰겠다, 말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그러면서 "이 책을 쓰게 해준 수많은 손길과 숨결과 다정함"에 감사를 표했다. 특히 소설 등장인물에 이름을 내어준 어머니 ‘명자씨’에게 “내 다정함은 모두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심사를 맡은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수상작에 대해 "소설이 언제나 삶의 한가운데서 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국면마다 박힌 문학적 순간이 우리를 계속 살게 한다는 비밀을 공유해 준다”고 평가했다. 이어 “살아가는 일 자체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가 새어 나오는 자리야말로 소설이 소설다운 특별함을 갖추는 곳임을 노련하게 일깨워주는 작품에 독자와 심사위원의 마음이 기울지 않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축사는 ‘반에 반의 반’에 추천사를 쓴 천 작가의 20년 지기 윤성희 작가가 맡았다. 윤 작가는 “내 소설의 퇴고도 잘 하지 않는데, 이 책은 추천사를 세 번이나 고쳐 썼다”고 했다. (스페인 음식 공부, 식당 운영, 대학원 수료 등을 하느라) 소설과 멀어졌던 천 작가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보며 “얼른 다시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내 사랑스러운 라이벌의 수상을 정말 축하드린다”고 했다.
이성철 한국일보 사장은 천 작가에게 상금 2,000만 원과 상패를 전달했다. 시상식에는 김경욱 김인숙 은희경 소설가 양경언 강동호 문학평론가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김소영 문학동네 대표 염현숙 문학동네 이사 김수아 정민교 문학동네 편집자 조연주 레제 대표 등이 참석했다. 한국일보사가 제정하고 GS가 후원하는 한국일보문학상은 1968년 만들어져 올해로 56회를 맞았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출판된 소설·소설집 중에서 수상작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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