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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동성 커플 축복' 허용… "교회, 성소수자와 함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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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동성 커플 축복' 허용… "교회, 성소수자와 함께하겠다"

입력
2023.12.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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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간청하는 믿음' 교리선언문 발표
"사제에게 동성애 축복 권한 명시적 부여"
보수 진영 "반대 세력에 무기 쥐어준 꼴"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교황청이 가톨릭 사제의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했다. 교회 예배 의식에서 동성 간 혼인 성사를 해선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간 가톨릭이 동성애를 죄악시하며 “죄를 축복할 순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점을 고려하면 역사적 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동성 결혼 금지' 교리 유지하며 '동성 커플 축복' 허용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이날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이라는 제목의 교리 선언문을 통해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에 대한 축복을 집전해도 된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공식 승인했다. 2년 전 ‘동성 결합은 이성 결혼만 인정하는 교회 교리를 훼손하는 것이어서 축복할 수 없다’고 했던 교리 선언을 대체한 것이다.

바티칸은 “이번 선언은 신중하고 아버지다운 분별력에 따라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을 사제에게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회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함께한다”고 덧붙였다. 축복은 신앙을 키우는 수단을 제공하는 일이므로, 양육돼야 하지 저해돼선 안 된다고도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축복 시기나 대상 결정에 대해선 “교황청이 사제의 재량에 맡긴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만 ‘동성 결혼의 공식 인정’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교회 정규 의식이나 미사 도중 동성 커플 축복을 집전해선 안 되고, 혼인 성사 예배 의식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언문은 "(이성 간) 혼인 성사에 대한 정식 축복과 혼동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문구도 담고 있다. 결혼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교리를 수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프란치스코 교황, '동성애자 포용' 결정적 조치

NYT는 “가톨릭 교회가 성소수자를 더 포용하도록 하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결정적인 조치”라며 높이 평가했다. 동성애자 신도에 대해선 ‘예수의 대리자인 사제가 하느님께 복을 청하는 행위’인 축복조차 불허해 왔던 것과 달리, ‘축복받을 수 있는 범위’를 넓힌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그동안 동성애 자체를 용인하지 않았다. 상위법격인 ‘교리’에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고, 여러 하위 선언에서도 동성애 자체를 죄악으로 보며 축복 집전을 금기시해 왔다. 1975년 ‘성(性)윤리상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에서 “동성애는 무질서한 것”이라고 표현한 게 대표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 베네딕토 16세(2005~2013년)도 “동성애는 본질적인 도덕악”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은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에 관한 가톨릭 교리를 깨지 않으면서도 동성 커플을 포용하는 방안을 고심해 왔다. 가톨릭 보수 진영이 용납하지 못할 선을 넘지 않되, 성소수자에겐 높기만 했던 교회 문턱을 낮추려는 취지였다. 특히 2020년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선 “동성 커플 보호 장치로서 시민결합법을 지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결합법’은 사실혼 관계인 동성 커플에게 법적 혼인에 준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개념이다.

이날 발표가 ‘교리’의 하위법 격인 ‘교리선언문’ 형식을 띠고 있고, 동성 결혼 공식 인정엔 선을 그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언문을 발표한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신앙교리성 장관(추기경)은 “결혼에 관한 교회의 오랜 가르침을 변경하거나 축복의 지위를 입증하지 않고도 ‘비정규적 상황’에 있는 커플과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의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보수 세력, 교황 언행은 이단이라 확신"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교회가 분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가톨릭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탓이다. 실제 지난 10월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에선 교회의 성소수자 포용 문제를 두고 가톨릭 고위직 간 거센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달 11일 바티칸은 미국 극우 가톨릭을 대변하는 조지프 E. 스트릭랜드 주교를 이례적으로 해임하며 격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논란이 격화할 조짐도 있다. 로베르토 데 마테이 가톨릭 레판토 재단 이사장은 WP 인터뷰에서 “이날 선언문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반대 세력이 교황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것”이라며 “일부는 교황의 언행이 이단에 해당한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 내부 갈등이 불붙을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김현종 기자
위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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