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받거나, 거부하려면 돈 내야
인권단체 중심으로 비판 고조
"난민 권리 약화… 유럽의 암울한 날"
유럽연합(EU)이 3년간의 협상 끝에 '신(新)이민·난민 협약'을 20일(현지시간) 타결했다. EU 국경에 도착한 난민 신청자를 회원국들이 나눠 받고, 거부할 경우 돈을 내는 게 골자다. 처음 발 디딘 국가에 망명 신청을 해야 한다는 기존 난민 협약('더블린 조약')을 손본 것이다.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의 관문 국가들에 난민 부담이 쏠리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 이사회 의장국인 스페인은 이날 "EU 회원국과 의회, 집행위원회 대표가 밤샘 협상을 거쳐 신이민·난민 협정의 정치적인 핵심 요소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협정은 그간 산재했던 EU의 난민 관련 5개 규정을 포괄해 단일화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의무적 연대'라고 명명된 '이주·난민 관리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라 특정 회원국에 난민 유입 부담이 발생할 때는 다른 회원국이 일정 수의 난민을 나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민 수에 따라 EU 기금에 돈을 내야 한다. 금액은 난민 1인당 2만 유로(약 3,000만 원)로 잠정 결정됐다. 아프리카·중동과 가까운 지중해변 특정 국가에만 편중된 난민 부담을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난민 신청자 대상 '사전 심사 규정'도 단일화하면서 입국 전에 국적, 나이, 지문, 얼굴 등 기초적인 신원 정보를 신속히 조사하고, 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건강·보안 심사도 이 단계에서 할 수 있다. 난민 심사 단계에선 통상 수개월이 걸리는 기존 절차 외에 상대적으로 승인율이 낮은 국가에서 온 난민은 국경에서 최장 12주가 걸리는 패스트트랙 과정으로 심사해 송환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이탈리아 "환영" vs 인권단체 "암울한 날" 엇갈린 반응
EU는 이민·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 2015년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사태로 난민 100만 명이 한꺼번에 유럽으로 몰려들면서다. 이후 계속된 난민 유입으로 EU 회원국 간 수용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더블린 조약이 더는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EU가 2020년 9월 새로운 난민 협약 협상에 나선 이유다.
이날 합의안에 대해 지중해 난민의 첫 도착지였던 이탈리아는 "큰 성공"이라며 "(난민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들은 더는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우려와 반발도 만만찮다. 인권단체와 유럽의회 내 녹색당 등 좌파 세력은 '이번 협정이 망명권을 훼손하고, 결국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이브 게디 국제앰네스티 유럽사무소 국장은 "이 협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EU 국경에서 사실상 구금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EU에서 망명을 신청하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 장치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117개 시민사회단체 연합인 유럽난민협의회도 "이날은 유럽의 암울한 날"이라고 날을 세웠다.
특히 인도나 튀니지, 튀르키예 등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은 국가 출신 이민자들은 EU 입국이 금지되거나 국경에서 구금될 수 있다고 로이터는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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