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정치화가 민주주의 위협’ 거부감 자극
공화 62% “유죄여도 경선 이기면 기회 줘야”
연방대법에 ‘뜨거운 감자’… ‘번복’ 전망 다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공직 피선거권을 박탈한 미 콜로라도주(州) 대법원 판결이 공화당의 내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오히려 트럼프 전 대통령한테 유리하게 작용할 조짐이다. ‘법원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결정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미국인의 통념이 ‘트럼프 팬덤(열광적 지지자 집단) 정치’ 추세와 맞물려 역풍을 일으키면서다.
“트럼프, 법적 위협을 정치적 자산으로”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이 공화당의 첫 주별 경선인 내년 1월 15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직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존 우위를 더 강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21년 1월 6일 지지자의 워싱턴 국회의사당 난입 내란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선 참가를 막은 전날 판결이 도리어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그에게 호재가 될 공산이 크다고 본 것이다.
“법적 위협을 정치적 금(자산)으로 바꾸려 애쓸 것”이라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예상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곧장 선거자금 모금에 착수했다. NYT에 따르면 판결 당일 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보낸 기부 독려 이메일 제목은 ‘투표용지에서 제외됐다, 반격하라!’였다. 그날 밤 아이오와주 워털루 유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리의 적들은 내 자유를 박탈하고 싶어한다”며 “그들이 당신의 자유를 박탈하도록 내가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기소될 때마다 부각해 온 피해자 서사”라고 NYT는 짚었다.
이번만큼은 공화당 내 다른 대선 후보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 편이다. 최근 상승세가 가파른 니키 헤일리 전 주(駐)유엔 미국대사도, ‘반(反)트럼프’ 노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온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지 결정하는 것은 법원이 아니라 유권자 몫”이라고 입을 모았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민주당이) 권력을 남용했다”고 비난했다.
진보 판·검사가 정의의 저울 속인다는 의심
반작용의 배경은 일단 ‘정치가 사법보다 우위’라는 인식이다. 이날 NYT가 공개한 여론조사(10~14일 등록 유권자 1,016명 대상) 결과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의 경우 62%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여도 당내 경선에서 이긴다면 공화당 대선 후보가 돼야 한다’고 답했다.
여기에 ‘사법부가 정치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불신이 포개졌다. 마이크 펜스 전 공화당 대선 주자 선거 캠프 의장을 지낸 칩 솔츠먼은 “진보 성향 판사나 검사가 정의의 저울을 속인다는 의심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의 연료”라고 FT에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보수 편향 판결과 대법관의 도덕적 일탈을 목격한 민주당 지지자들은 연방대법원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판결을 상고해 ‘뜨거운 감자’를 받아 들면 대법은 진퇴양난 처지에 놓인다. 판결을 인용하자니 유권자 권리를 잠식했다는 성토에 직면할 게 분명하다.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믿는 트럼프 전 대통령 팬덤이 보일 격앙된 반응도 걱정거리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손을 들어주면 균형감 상실이라는 평판 훼손을 재차 감내해야 한다.
다만 전문가 사이에서는 ‘번복’이 중론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직 내란 선동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판결 관련 질문에 “그(트럼프)는 확실히 내란을 지지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대통령 피선거권 제한에 대해서는 “법원이 결정할 일”이라며 거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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