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유치 올인 기회비용 막대
인구소멸 대응 허비, 미일중 약진
'망수행주' 과오 반복해선 곤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 막판 프랑스 파리를 찾았을 때 이재용 정의선 회장 등 재계 총수들과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일이 늦게 끝나면서 저녁 식사 자리를 함께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그동안 노고가 많았던 이들을 격려하며 술 한잔 걸쳤다고 문제 삼을 건 아니라고 본다. 장삼이사들도 일과를 마치면 폭탄주로 심신을 푼다.
대통령이 총수들을 수시로 불러 데리고 다닌 것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부르면 안 갈 수 없지만 사실 기업인도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나라 정상급 인사를 한 번 만나는 것만으로도 해당 국가에서 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을 받기 마련이다. 시장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엑스포 민간유치위원장을 맡은 최태원 SK 회장이 19일 “유치 활동 중 얻었던 시장 정보와 새로운 것들을 계속 네트워킹하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큰 표차로 진 건 황당하고 유감이나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각국이 총력전을 펴는 국제 행사 유치 경쟁에서 항상 이길 순 없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것도 폄하할 순 없다.
그러나 지난 1년 반 사실상 엑스포 유치에 ‘올인’하는 사이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데 따른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 국가소멸 위기에 대응할 시간을 허비했다. 지난해 9월 2만1,885명이었던 출생아 수는 1년 만에 1만8,707명까지 떨어졌다. 외신조차 한국 인구가 흑사병 당시 중세 유럽보다 더 빨리 감소하고 있다며 우려하는데도 뾰족한 대책은 나온 게 없다. 사실 지금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든 젊은 층은 연애나 결혼, 출산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본능보다 생존이 더 급하다.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시급한데 전통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서비스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등으로 전환하는 일은 지지부진하다. 등골 휘는 사교육비와 시한폭탄이 된 가계부채도 줄기는커녕 더 커졌다. 고물가도 여전하다.
더구나 그사이 다른 나라들이 저만치 앞서간 건 뼈아프다. 올해 미국과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한국보다 높을 전망이다. 물가도 안정세다. 중국은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에도 자체 생산 7나노급 첨단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어느새 전기차 강국이 돼 전체 자동차 수출도 일본을 제치고 전 세계 1위에 올랐다.
전설상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요 임금에겐 단주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밤낮없이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건 물론 물도 없는 곳에서 배를 끌고 다녔다. 물이 충분해야 띄울 수 있는 배를 맨땅에서 움직이려 하니 힘은 힘대로 들고 소득은 없었다. 결국 요 임금은 아무 인연 없는 순에게 왕위를 넘겼다. 여기에서 나온 사자성어가 없을 망 자를 쓰는 망수행주(罔水行舟)다. 물도 없는 곳에서 배를 끈다는 뜻으로, 의욕만 넘쳐 상황도 살피지 않은 채 무모하게 일을 밀어붙이는 걸 가리킨다. 엑스포 유치전 결과는 망수행주를 떠올리게 한다.
의욕과 과욕을 구별하고 헛힘만 쓸 무모한 시도는 경계하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다. 해야 할 일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해 급한 일부터 추진해야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걸 막고 기회비용도 줄일 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다가 ‘어? 이 산이 아닌가 봐’가 되면 지도자는 물론 조직까지 무너지기 십상이다. ‘하면 된다’로 밀어붙이는 게 가능한 시대도 아니다. 정권의 힘이 가장 센 1년 반이 이렇게 지났다. 엑스포 유치전 참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119대 29'는 다시 총선 결과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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