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뚜껑 유실, 구청 책임져야"
지난해 8월 서울을 강타한 집중호우 당시 강남역 인근에서 뚜껑 열린 맨홀에 빠져 사망한 남매의 유족에게, 지방자치단체가 16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구청이 맨홀을 관리하지 못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 허준서)는 지난해 폭우 때 숨진 A(여성)씨와 B(남성)씨 남매의 유족이 서초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A씨는 사망 당시 50세, B씨는 49세였다.
남매는 지난해 8월 8일 저녁 폭우가 쏟아질 당시 강남역 인근에서 도로를 건너다가 뚜껑이 열려 있던 맨홀에 빠져 숨졌다. 그날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서초구 일대에 쏟아진 강우량만 267㎜에 달했다. 남매는 폭우 탓에 자동차 시동이 꺼지자 내려서 대피했다가, 비가 잦아든 뒤 귀가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 측은 서초구청이 맨홀을 관리하지 않아 남매가 숨졌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도 유족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강남역 일대 도로에 설치된 맨홀의 뚜껑은 외부의 물리력 또는 폭우에 의한 빗물 역류로 열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며 "서초구청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발생한 도로에 홍수 및 집중호우 때마다 침수 피해가 발생한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기록적 폭우 때문에 사고를 예측하거나 회피할 수 없었다"는 구청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맨홀 뚜껑이 빗물 역류로 인한 수압에 의해 열렸더라도, 맨홀이 열린 채 방치되어 있었던 이상 구청의 관리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사고 발생 당일보다 비가 적게 내렸던 2011년 7월 홍수 및 집중호우 당시 하수도의 빗물이 맨홀 뚜껑 밖으로 역류한 적도 있었다"며 "이 사고가 천재지변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구청이 유족에 지급해야 할 배상금으로 16억여 원을 책정했다. 남매가 살아있었더라면 벌어들였을 소득(일실수입)과 위자료(정신적 손해배상금)를 종합한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A씨와 B씨도 사고 당시 폭우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도로에 빗물이 가득 차 있었던 만큼 상태를 주의 깊게 확인하고 건넜어야 했다"며 사고에 관한 구청의 과실 책임을 80%로 제한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