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얼마 전 새벽 누군가가 경복궁 담장 일대에 특정 문구를 낙서했다. 낙서는 2023년 12월 16일 오전 1시 42분부터 오전 3시가 채 안 된 시간까지 세 곳에서 이어졌다. 범인을 잡고 보니 낙서를 한 범인은 10대의 임모군이었지만, 낙서를 교사한 사람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임군은 그저 낙서를 쓰면 돈을 주겠다는 누군가의 제안을 받고 범행을 저질렀는데, 그렇게 새벽 시간 경복궁 담벼락에 낙서를 남기고 인증샷을 찍어 올렸던 대가는 10만 원이었다.
10만 원짜리 낙서는 임군의 삶에도, 우리 사회에도 큰 충격을 남겼다. 그는 하룻밤 아르바이트 금액의 몇 배가 넘는 벌금과 비난, 그리고 더 큰 처벌의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경복궁이라는 문화재의 가치가 이렇게 찰나에 훼손될 수 있음을, 다시 보니 그 담벼락은 이미 다수가 장난이라는 변명으로 포장한 낙서들로 훼손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동시에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한 이후 경복궁과 청와대 인근의 어이없고 한심할 정도로 허술한 보안 수준을 보여주기도 했다.
경복궁의 낙서는 이틀도 채 안 돼 모방범죄를 낳았다. 20대 남성은 이미 낙서로 훼손된 경복궁 담벼락에 오후 10시쯤 국내 음악 밴드 이름과 앨범명을 스프레이로 휘갈겼다. 그리고 자수한 그는 경찰서에서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랬다는 한심한 범행동기를 밝혔다. 2024년 1월 2일에도 지하철 국회의사당역 역사에 검은색과 빨간색의 낙서가 또 발견됐다. 법, 정치라는 단어와 알 수 없는 문구들에 물음표를 휘갈긴 행위자는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그냥 정신 나간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그저 공공재나 사유재산에 피해를 끼친 범죄행위라고만 치부하기엔 낙서의 부정적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낙서가 지역사회에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s)처럼 범죄 유인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곳이라는 이미지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에 대한 애착과 문제 해결 의지 형성을 방해하기에 결국 범죄자들의 유입이 쉬운 곳이 된다. 더욱이 낙서라고 다 똑같은 낙서도 아니다. 낙서에도 종류가 있고, 그 종류에 따라 목적과 동기가 다르다.
애리조나주립대의 '문제지향적 경찰활동 센터'에서는 낙서의 유형을 조직폭력 관련 낙서, 저항 낙서, 예술적 낙서, 혐오 낙서 그리고 즉흥적 혹은 악의적 낙서로 구분해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경복궁의 모방범죄는 즐거움을 위해 즉흥적으로 진행된 낙서다. 반면 지하철 국회의사당역의 낙서는 전형적인 혐오 낙서다. 혐오 낙서는 인종, 종교, 문화, 정치, 성적 지향성에 대해 공격적인 문구나 상징을 남긴다.
혐오를 목적으로 하는 이념적 낙서는 특정 대상을 목적으로 하기에 낙서 장소 역시 낙서 내용과 연관성을 갖는다. 상징적 그림보다는 가독성이 높은 글자를 사용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들은 분노, 혐오, 적대감에 기인해 낙서 행위를 한다. 국회의사당이 가까운 지하철역에 붉게 흘러내린 낙서를 남긴 범인은 정치적 분노와 혐오를 표현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경복궁 담벼락의 낙서가 만약 사이트 홍보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일회성의 일반 낙서로 해석될 수 있지만, 경복궁이라는 문화재 훼손을 목적으로 한 행위였다면 이는 명성과 권위 훼손을 위한 저항 낙서일 수 있다. 이는 교사범을 잡고 난 이후에야 명확해진다.
누군가는 낙서를 표현의 자유라고도 하고, 예술이라고도 한다. 때로는 거리의 낙서가 일탈과 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위대한 낙서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복궁과 국회의사당역의 낙서를 통해 예술을 보지 못했고, 혐오와 깨진 유리창을 보았다. 문화재를 하루 일당으로 평가절하하는 한국 사람을 보았고, 무질서를 노리는 범죄자를 보았고, 허술한 보안을 보았다. 낙서범이 어떠한 죄명을 받아 어떻게 처벌받는지도 중요하지만, 흐트러진 공공질서 의식과 보안 재정비가 더욱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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