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 간호사 "드라마는 비현실적"
맞으며 일하는 직업, 정신병동 보호사
극한의 감정노동, 법적 보호는 미약해
"정신병동 간호사가 휴식 시간이 어디 있어요."
지난해 11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음습하고 폐쇄적일 것만 같은 정신병원을 양지로 불러내 큰 인기를 끌었다. 정신병원도 사람 사는 곳이고,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점을 부각한 휴먼 드라마다. 하지만 진짜 그곳에서 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근무하는 8년 차 간호사 이모씨는 4일 "각색이 많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 특성을 감안해도 현실과 너무 다른 환상만 가득하다"고 단언했다.
실상이 어떻길래 현장에선 혹평만 나오는 걸까. 2019년 발표된 한 연구결과를 보면, 정신과병동 간호사 10명 중 9명은 언어적 폭력을, 4명 중 3명꼴로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 거의 다 심신의 피해를 본 셈인데, 그런 가해를 치료하라고 존재하는 의료시설이기에 대처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감정노동'의 끝판왕이라는 정신과 의료종사자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욕설 듣고, 뺨 맞고... 일상이 폭력에 노출
환자의 거짓말은 가장 흔히 겪는 애로사항이다. 이씨는 입사 초 만났던 중년의 여성 환자를 잊지 못한다. 조현병 증세로 입원한 여성은 그를 망상 증세의 타깃으로 삼았다. 그는 다른 환자나 병원 직원을 만날 때마다 "이씨가 나를 성적으로 희롱하고 욕한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환자 어머니에게까지 항의 전화를 받는 등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이씨는 "나의 억울함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해명을 잘 해야 하는 게 고역이었다"고 했다.
일상이라는 욕설도 때론 견디기 어렵다. 12년 차 베테랑 정신과 간호사 A씨는 "인격장애를 가진 환자가 주로 욕을 하는데, 가족을 건드리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면서 "말의 상처는 쉽게 치유하기 힘들어 차라리 폭력이 나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극한의 감정노동은 간호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간호사를 도와 환자의 치료를 용이하게 하는 정신병동 보호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주된 업무는 거친 환자를 진정시키거나 제압하는 것이라 특히 물리적 폭력에 노출돼 있다. 20년 정도 정신병동 보호사로 일한 B씨는 "덩치 큰 남성 환자가 난동을 부리면 보호사 4명이 달라붙어도 제어가 안 된다"며 "뺨을 맞거나 깨물리는 경우는 다반사"라고 했다. 성희롱 잡음에도 자주 휘말린다. 폭력을 제압할라치면 옷을 다 벗고 "성희롱으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환자도 있다.
"참는 게 전부... 업무 특성 맞게 법 바꿔야"
최선의 대응법은 그저 무시하는 것이다. A씨는 "무슨 짓을 해도 반응하지 않거나, 정 심하면 담당 의사에게 말해 주의를 주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B씨는 폐쇄회로(CC)TV 촬영 범위에서 환자와 멀리 떨어져 대화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혹시 모를 성적 협박 등에 대비해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그는 "100번 참아도 한 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허탈해했다.
법도 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감정노동자들이 폭언 등 피해를 입은 경우 업무 중단, 휴게시간 연장 등을 보장받게 됐다. 그러나 수술, 응급, 교대근무 등 각종 사유로 이런 대처는 사실 있으나 마나다. 정신병동 보호사는 아직 법이 정하는 보건의료인력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의료노동자들은 은행법과 항공보안법처럼 보건의료분야도 사업자 특성에 맞게 법을 바꿔달라고 호소한다.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소장은 "의료법에 명시된 감정노동 관련 조항은 구체성이 현저히 떨어져 적용이 어렵다"며 "명찰녹음기 패용, 가해자 고발조치 등이 들어간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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