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설명회서 자구안 발표
계열사 매각, 지분 담보 제공 등
산은 회장 "애초 약속 안 지켜, 미흡"
워크아웃 개시 동의 요건 75%... 안갯속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 기로에 선 태영건설을 살리기 위해 태영그룹 측이 계열사들을 매각해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자구계획을 내놓았다. 다만 매각 대상 계열사에 방송사 SBS가 빠진 데다, 총수 일가의 사재출연 계획도 밝히지 않아 일부 채권단은 반발하고 있다. 윤세영(91)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직접 나서 회생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지만,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3일 산업은행 등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직접 차입금은 1조3,000억 원이다. 여기에 120여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보증까지 합하면 전체 태영건설의 채무는 9조8,000억 원에 달한다. 윤 회장은 이날 산업은행 본점에서 채권단 400여 곳을 상대로 진행한 '태영건설 채권단 설명회'에 직접 참석해 "태영이 이대로 무너지면 협력업체에 큰 피해를 남기게 돼 줄도산을 피할 수 없다"라며 "피해를 최소화해 태영과 함께 온 많은 분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도록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채권단은 11일 열리는 1차 금융채권자협의회에서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데 75%(신용공여액 기준) 이상 동의하면 개시되지만, 동의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법원의 회생절차(법정관리)로 넘어간다.
눈물 흘리며 고개 숙인 윤세영 창업주
윤 회장은 "태영건설의 현재 수주잔고는 12조 원이고 향후 연간 3조 원 이상 매출이 가능하다"며 "실제 문제 되는 우발채무는 2조5,000억 원 정도"라고 강조했다. 나머지 7조 원 규모의 채무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무위험보증이라는 주장이다.
태영건설 자구계획 발표가 뒤를 이었다. 태영 측은 ①지난달 매각한 자회사 태영인더스트리의 매각 대금 2,400억 원 중 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고 ②종합환경기업 에코비트와 ③골프·레저 운영사 블루원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④항만시설관리 업체 평택싸이로 지분(62.5%)에 대한 담보도 제공하기로 했다.
태영그룹의 지주사인 TY홀딩스가 지분 50%를 보유한 에코비트는 매립·수처리 및 산업 폐기물 소각 사업을 하는 회사로, 기업 가치는 최대 3조 원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TY홀딩스가 지난해 1월 태영건설 정상화를 위해 에코비트 보유지분을 담보로 연 이자 13%로 4,000억 원을 빌린 것을 감안하면 태영이 에코비트 매각으로 손에 쥘 현금은 많지 않을 전망이다. 골프장 3곳을 보유한 블루원도 회원 보증금을 제외하고 매각 대금을 받아야 하는 만큼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BS 지분 매각, 총수 일가 사재 출연 없어
반면 태영은 그룹 핵심 자회사인 SBS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다. SBS에 대한 윤 회장의 애착이 유달리 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방송법상 대기업 지분 제한과 방송통신위원회 최대주주 변경 승인 등 제약이 많다는 게 태영 측 입장이다. 자구계획에 총수 일가의 사재출연 계획도 없어 태영 측이 워크아웃을 위한 강도 높은 고통분담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012년 금호산업의 경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200억 원 규모의 사재를 내놓으면서 '경영정상화에 실패할 경우 자신의 지분을 포기하겠다'는 각서까지 제출한 끝에 워크아웃이 개시됐다. 반면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금융계열사 지분을 출연하라는 채권단 요구를 거부한 동부건설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성의 없는' 자구안에 채권단은 부글부글
채권단은 태영 측의 자구계획 방안을 두고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실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충분치 않다고 직격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을 열어 "태영 측이 당초 약속한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대단히 유감스러운 상황"이라며 "상식적으로 이 제안으로 채권단 75%가 동의한다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중 태영건설 지원을 약속한 1,549억 원 중 400억 원만 넣은 사실을 꼬집으면서, 태영 측에 추가 자구안을 내놓을 것을 압박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채권단 관계자도 "(자구계획에) 새로운 내용이 하나도 없어 무엇으로 채권단을 설득하려 한 건지 모르겠다"며 "노령의 회장이 호소한 것 외 별 다를 게 없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일각에선 태영 측이 워크아웃이 성사될 것으로 보고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협력업체들의 줄도산은 정부·여당에 최대 악재가 되는 만큼 정부가 태영건설 문제를 워크아웃으로 유도하는 데 총력을 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 채권만 동결하는 워크아웃과 달리 법정관리에선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 상거래채권까지 모두 동결돼 분양 계약자와 500여 협력 업체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