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8000억원 규모 R&D 종합시행계획
연구자들 가이드라인 따라 점검받아야
"사실상 반강제적인 연구비 조정" 반발
예산 많이 깎인 연구는 중단까지 유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대비 12% 삭감된 연구개발(R&D) 예산을 현장에 본격 투입하기에 앞서, 기존 연구를 평가하고 연구 기간 축소나 연구 중단을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크게 삭감된 예산에 연구 내용을 맞추거나 연구를 아예 중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 상당한 진통이 수반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기정통부는 4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4년도 연구개발사업 종합시행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올해 과기정통부 R&D 예산은 5조8,577억 원으로, 전년(6조6,726억 원) 대비 약 12%가량 삭감된 규모다. 종합시행계획에 '계속과제 추진 가이드라인'을 담은 과기정통부는 "연구자가 전년 대비 예산 감액 등의 변화에도 불구, 안정적이고 원활한 사업·과제 수행이 가능하도록 연구비 조정 절차 등을 안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4조원 규모 과제 '점검' 후 연구비 할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존 과제를 이어나가는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은 다단계 과제의 경우 단계평가를 받거나, 연차점검보고서를 제출해 '점검'을 받아야 한다. 연구자들이 이달 초 지난해 연구실적과 올해 연구계획 등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하면, 이를 점검해 할당될 연구비를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점검이 "사업 및 과제의 특성, 규모를 고려해 자율적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비와 연구계획 조정도 "재단과 연구자의 상호 협의를 거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연구현장에서 사실상 연구자들은 연구계획을 축소한 보고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고, '반강제적'인 연구비 삭감이 이뤄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동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노조위원장은 "사실상 과제 책임자들은 이미 삭감된 연구비 규모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예산 삭감 사유를 만들어 보고서를 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점검을 받아야 하는 예산 규모는 신규 과제를 제외하고 약 4조 원에 이른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연구비 감액 규모가 커 연구 수행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연구 기간 단축이나 연구 중단도 허용된다. 올해 종료되는 과제의 연구비가 대폭 삭감됐다면, 연구책임자의 요청에 따라 연구 기간을 6개월 이내로 단축시킨다는 계획이다. 연구자가 아예 연구 중단을 요청한 경우라면, 연구자의 귀책이 없음을 확인한 후 연구를 중단시키는 방안도 내놨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회장은 "계속과제 추진 가이드라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어떤 과제를 어떻게 중단시킬지 기준을 제시한 '중단 가이드라인'"이라면서 "연구 비효율을 걷어낸다고 했지만, 외려 연구자들이 평가에 매달려야 해서 연구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구 중단되면 새 과제 도전 기회 부여"
과기정통부는 해당 가이드라인이 연구 현장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작성됐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예산의 변동이 있기 때문에 연구 수행을 어떻게 할지 연구자의 의견을 받아 확정해주기 위한 목적"이라며 "연구가 중단된 연구자들에게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올해 1조1,406억 원이 편성된 글로벌 R&D 관련 가이드라인도 함께 발표했다. 7,654억 원이 편성된 '글로벌 기초연구'의 경우 연구자가 △파견 연구 △초청·방문연구 △해외기관 연구시설·장비활용 등 국제공동연구의 유형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1,071억 원이 편성된 '신규 글로벌사업'은 사업별 국제협력 목적에 따라 연구자의 상황에 맞는 유형의 사업에 지원 가능하도록 자율성을 보장한다. 과기정통부는 이달 내 '국제공동연구 매뉴얼'을 마련해 글로벌 R&D 추진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