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포스텍 ISDS 공동기획
[지방 청년 실종 : 9회 청주]
편집자주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 매달 첫 번째 수요일(이번 달은 창간특집 게재로 두 번째 수요일)에 비수도권 지역을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_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김규식(청년뜨락5959 센터장)= 청주시에서 청년 활동을 하고 있다. 군 복무기간 처음으로 청주를 떠나 살았다. 경기 파주시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오가느라 거치는 서울에서 많은 것이 눈에 보였다. 이후 서울에서 청년 관련 활동에 참여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청주에서 NGO 활동을 했다. 4명이 모인 독서 모임으로 시작해 결국 청년센터를 만드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시에서 후원하는 청년정책 네트워크의 위원장도 맡게 됐다.
이범근(수학 강사)= 교사를 꿈꾸며 충북대 수학교육과를 나왔다. 기간제 교사와 학원 강사를 오가며 생활했다. 이곳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교육도시 청주의 위상 변화를 지켜봤다. 현재 청주 최상위권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전국 단위 자사고를 목표로 공부하고, 합격하면 청주를 떠난다. 청주에서 상위권 학생들이 가는 고등학교는 몇 개 남지 않았다.
_많은 사람이 청주를 전통의 교육 도시로 알고 있는데, 그런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이= 청주는 교육 도시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봤다. 과거에는 명문고도 많고 대학도 많아 인근 지역 인재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건 1970년대 얘기인 것 같고 지금은 아니다. 청주에서도 자율형공립고라고 해서 자사고와 비슷한 개념의 학교를 만들려고 했다. 청원고 교원대부고 오송고 청주고까지 4개다. 그런데 이들 학교 교육 과정은 일반고와 다를 게 없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입학하고, 이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을 갈 뿐이다. 대체로 졸업생 30~40%가 재수를 한다.
_청주에 오기 전 사전 조사 결과는 청년이 많이 떠나지도 않고, 좋은 직장도 많고, 평균연령도 40대로 젊었다. 전국 지방 도시 중 우수한 양적 지표를 유지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여러분 말씀을 듣다 보니 이제까지 취재한 지방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교육만 놓고 보면 비수도권 도시들은 상황이 비슷할 것이다. 청주 평균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주변 산업단지 때문이 아닐까 한다. 대기업도 있고. 그런데 충북대학교 공대는 서울 웬만한 대학보다 입학 성적이 높은 곳이 있다. 충북대 화학공학과에 가면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하이닉스 등 좋은 기업에 갈 수 있으니. 기업의 지역인재 채용 제도 기회를 활용하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_청년뜨락5959 센터에서 활동하는 청년 중 타 지역 출신도 있는지, 그들이 청주에 정착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 타 지역 출신이 많이 있다. 청주 정착 이유는 살기 좋아서보다는 수도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고,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스럽게 충북 중부권 거점이 된 지리적 여건도 큰 것 같다. 충북 중부권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충북의 다른 도시 단양 제천 영동은 병원 등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런데 단양 제천 주민이 아이를 낳으려면 강원 원주시로 가야 하고, 영동은 대전으로 가야 한다. 충북이 남북으로 길게 퍼져 있어, 생활권이 셋으로 나뉜다. 그중 충북 중부권인 진천, 증평은 청주가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청주가 거점 역할을 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오래됐지만, 2014년 청원군과의 통합이 결정적 계기다. 청주가 통합시가 되기까지 3, 4번의 주민투표가 있었다. 처음엔 주민 50~60%가 반대했지만, 결국 청원 주민 찬성률이 올라가며 통합됐다. 청원군 주민이 통합으로 돌아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곳이 청원군 오창읍이다. 1990년대 오창에 과학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수도권에서 이주한 사람들과 청주에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청주와 통합하자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특히 오창으로 이주한 젊은 주부들이 찬성 여론을 주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주는 충북 중부의 거점 도시가 됐다. 지방 소멸 시대라고 하지만 현재도 청주시 인구가 조금씩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주택 가격이다. 인근 세종과 대전시에 비해 주택가격이 저렴해 청주 인근 신도시에 거주하며 세종과 대전으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청주가 오래전부터 갖춰온 생활 인프라와 저렴한 주거 비용이 비수도권 도시 중 드물게 인구 증가를 유지하는 경쟁력이다.
_세종시 주민이 세종시 집값이 올라가니까, 인근인 청주시 오송신도시에 집을 사는 식으로 청주 인구 증가가 유지된다는 건가.
김= 그렇다. 우스갯소리로 대전에서 전세 살다가 세종이 저렴해 이사했는데, 세종 전셋값이 대전과 비슷하게 올라 결국 대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까운 청주로 이사한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오송은 KTX 개통 후 전국 어디든 길어야 4시간이면 도착하는 등 전국 교통의 중심이 됐고, 주거비도 저렴하다. 청주 소재 대학 주변도 마찬가지여서, 수도권 대학가에서 활발한 대학생 주거비 절약 대책인 셰어 하우스나 민달팽이 유니온 활동들이 청주에서는 딴 세상 얘기다.
_청주 청년 센터의 고민도 타 지방도시와 다를 거 같다.
김= 청주는 인구가 유지되고 늘어나는 거의 유일한 지방 도시다. 세종시의 경우는 건설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그때 20·30대에 세종시에 입주한 청년들이 더 이상 청년이 아니다. 그런데 신규 유입은 적어지고 있다.
이= 청주는 구직난보다는 구인난이 더 심하다. 최근 러시아나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도 많아졌다. 서원구 사창동 쪽에는 이런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러시아 간판도 흔히 눈에 띈다. 청주 주변 공단에서는 생산직 일자리 요구가 많은데, 지역 주민만으론 모자라기 때문이다.
_최근 거점도시 조성 논의가 활발한데, 청주는 이미 자생적으로 거점도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김= 청주는 충북 중부권의 수도권처럼 느껴진다. 20세기 초부터 청주는 도넛 형태의 가운데 존재하고 청원군이 둘러싸고 있다. 이 형태가 계속 유지되면서 중심으로 생활 인프라가 집중되고 내핵과 주변이 동시에 점점 커지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그렇다. 청주의 구도심과 그 주변의 위성도시 형태로 청주가 확대되고 있다. 청주시 율량동,동남지구처럼 자연스럽게 거주 역할을 주로 담당하는 위성도시가 늘어나고 있다. 마치 도넛의 껍질이 커지듯.
_수도권 영향력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청주는 독자적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단적으로 천안에 직장이 있거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 상당수는 수도권에 살며 출퇴근이나 통학을 한다. 하지만 오송 세종의 경우는 청주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은 많지만 매일 서울에서 오가는 경우는 적다. 청주는 수도권의 흡입력에서 벗어난 독자적 도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동의한다. 지금 청주 생활권은 수도권과 더 가까운 북쪽 지역인 오창 음성 증평으로 산업단지가 확장되면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식으로 청주가 확장되고 청년인구가 유입되는 게 아닌가 싶다.
김= 수도권에 비유하면, 행정구역상으로는 성남시 분당구이지만 분당 주민은 성남이 아니고 분당에 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청주도 확장되면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다 청주시 내에 있지만 오창 주민은 오창 산다고 하고, 오송 주민은 오송 산다고 하고. 최근 개발된 동남지구 사는 사람들은 동남지구에 산다고 한다.
_청주를 중심으로 신도시가 빠르게 확장하면서 각 지역이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느슨한 형태의 생활권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 아직은 주요 생활 인프라가 청주 안에 머물러 있다 보니, 주거지가 주변으로 확대되면서도 도심과 왕래가 활발해 신도시와 구도심이 문화가 다르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또 청주 주변 신도시 간의 주민 이동도 활발하다. 특히 신도시는 아직 교육 여건이 부족한 점이 많아 청주 의존도가 높다. 청주와 이를 둘러싼 충북 중부권의 일자리는 제조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그래서 20, 30대는 직장이 있는 증평 등지로 이주한다. 하지만 자녀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교육 때문에 청주로 유턴한다. 진천 음성의 혁신도시에 직장을 잡은 친구들이나 괴산에 사는 지인도 남편은 직장이 있는 그 지역에 남아 주말부부를 하더라도 결국 가족은 청주에 거주한다. 교육을 비롯한 생활 인프라가 도심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 저도 아이가 여섯 살인데, 청주로 이사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증평에는 초등학교가 구도심에 몰려 있어, 통학 거리가 먼 데다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를 걸어서 지나가야 해 흔히 얘기하는 청주의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로 옮기려 한다. 중·고등학교도 굳이 떠날 이유가 없어 청주에서 보내면 된다. 대학은 아이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에서 청주 최상위권 학생들은 전국 모집 자율고 등을 가려 한다고 말했지만, 1%를 제외한 99%가 다닐 만한 고등학교는 여전히 청주에 많다. 그래서 증평 괴산 등지에서 청주로 유학 오는 학생이 많다.
_청주가 충북도 내에서 너무 비중이 커지는 것에 따른 문제는 없는지.
이= 청주와 주변 지역 간 인프라 격차가 너무 크다. 증평은 피부과가 하나도 없고, 경찰서도 없다. 공단과 혁신도시 등이 생기며 청주 중심 생활권이 커지고 일자리가 늘어난 효과도 있지만 이런 신도시의 인프라는 아주 부족한 상황이다.
김= 청주에 생활 인프라 집중은 청주시와 청원군이 나뉘어 있을 때도 청원군청이 청주시 한가운데 있었을 정도로 오래된 문제다. 청주가 충북 중부의 거점이자 메가도시로 성장하려면, 오래전부터 집중됐던 각종 인프라를 어떻게 지역적으로 분배해 균형발전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청주의 발전 가능성은 충북 전체의 지역 소멸 문제와 연관해서 봐야 한다. 전국에서 가장 빨리 선거 결과가 나오는 곳이 단양이다. 만 표, 이만 표 정도밖에 안 되니. 충북은 증평 진천 음성 청주 빼고 나머지가 다 소멸 위기다. 청주권에서 형성된 생활권이 어떻게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느냐가 청주의 지속 가능성과 밀접하게 연관될 것이다.
_청주에 살면서 아쉽게 느끼는 게 있는지.
이= 아무래도 제가 교육 쪽에 있다 보니 청주는 입시를 비롯한 모든 정보가 늦게 전파된다. 학교도 학부모도 학생들도 그렇다. 예를 들어 최근 대학입시는 학생부보다 내신과 수학능력시험 비중이 훨씬 높아졌는데, 여전히 청주에선 수능에 집중하는 것은 일부 우수 학생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청주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 거부감이 있고, 한발 늦게 따라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뿌리 깊다. 삼국시대부터 청주는 어제는 백제 땅, 오늘은 신라 땅으로 뒤바뀌던 곳이 아닌가. 충청도가 말이 느린 것이나 빙빙 돌려 표현하는 것도 이런 역사적 경험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리 변한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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