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크는 펫 산업]
네 집 중 한 집 반려가구...반려인 1300만 시대
각양각색 '멍캉스' 즐길 숙박 패키지 상품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전문 장례 서비스 등장
약 100km. 서울 서초구에 사는 남모씨가 강원 홍천군까지 이동한 거리다. 차로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을 위해서다. 프렌치 불도그 토니(8)와 로니(4)다. 8일 강원 홍천군 소노펫클럽앤리조트(소노펫)에서 만난 토니와 로니는 4,958㎡(약 1,500평)에 달하는 천연 잔디밭에서 '엄마' 남씨가 던진 장난감을 주우러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이곳을 찾는다는 남씨는 "서울에는 애들이 뛰어놀 공간이 없다"면서 "올 때마다 너무 좋아해서 자주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같은 날 만난 이모(49)씨도 코와 볼이 추위 탓에 빨개진 채로 래브라도리트리버 구름이(4)와 운동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가족이 된 구름이는 순하지만 몸집이 워낙 커서 함께 여행을 다니기 쉽지 않았다고. 소노펫에 2박 3일 가족 여행을 왔다는 그는 "대형견도 큰 걱정 없이 함께 갈 수 있는 숙소를 알아보다가 이곳에 왔다"면서 "구름이를 데리고 가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인데 행복해하는 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1300만 반려인 잡아라" 호텔업계 특명
가축은 옛말, '털북숭이 친구들'을 엄연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가구는 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반려가구는 전체의 25.7%를 차지한다. 네 집 중 한 집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연구소가 추산한 반려인 수는 1,262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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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산업도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농림식품축산부, 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12년 9,000억 원에서 2022년 8조 원으로 아홉 배 가까이 커졌다. 유통·외식·여행·상조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시장 선점을 노리고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여행업계에선 아직까진 반려묘보다는 반려견에 초점을 맞춘 곳이 많다. 고양이는 상대적으로 행동 반경이 좁고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서다.
놀이도 음식도 같이 즐긴다, 가족이니까
가장 활발한 건 호텔업계다. 2020년 문을 연 소노펫은 아예 1개 동(70개 객실)을 '반려동물 동반 투숙객 전용'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반 이용객과 반려인이 함께 사용하는 옆 동까지 더하면 모두 157개 객실이다. 경기 고양시에 있는 경기도 유일 5성급 호텔 소노캄은 26개 객실에 전용 동물병원까지 갖추고 있다.
소노펫은 반려견 크기에 따라 소형·중형·중대형·대형·배려견(나이 들거나 아픈 강아지)을 위한 5개 공간으로 나눈 드넓은 잔디 운동장과 함께 투숙객과 반려견을 대상으로 '일일 수업'도 운영하고 있다. 요일마다 오전·오후에 한 번씩 서로 다른 주제로 수업을 연다. 이날 '클래스 룸'에선 복종 훈련 기본 수업이 이어졌다. 교실 안 고급 스피커에선 '강아지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클래식 음악)이 재생되고 있었다.
강사는 소노펫 직원들이다. 이곳 직원들은 반려동물 관련 학과를 졸업했거나 자격증(반려동물행동지도사 등)을 갖춘 전문가다.
"아이들은 사족보행을 하니까 고개를 들면 하체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거든요. 머리 위쪽으로 간식을 들고 자연스럽게 앉게 하는 거예요. 잘 해내면 칭찬과 함께 간식을 하나 주세요."
직원 한예진씨가 세상에 나온 지 이제 열 달쯤 된 몰티푸(몰티즈와 푸들의 믹스견) 사월이에게 '앉아' '엎드려' '기다려'를 가르쳤다. 수업 시작 전까지만 해도 한씨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등 산만했던 사월이는 어느새 얌전해졌다.
한바탕 뛰고 수업도 듣다 보면 어느새 출출해지게 마련. 소노펫은 지난해 8월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 특례' 대상에 이름을 올려 반려동물 동반 식당을 6개 사업장 열 군데에서 2년 동안 시범 운영한다. 1층 '씽킹 도그'에선 반려견과 주인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파스타 등을 판다. 위생을 고려해 사람 음식을 만드는 주방과 동물 음식을 만드는 주방은 가림막으로 철저히 분리해 놓았다.
'금쪽 같은 내 강아지' 배려한 디테일이 생명
이른바 '멍캉스'(멍멍이+호캉스) 숙소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핵심은 '디테일'에 있다. 소노펫이 반려견 동반 고객을 위해 따로 마련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니 객실이 있는 복도가 마치 영화관 복도처럼 어두컴컴했다. 사람보다 빛에 훨씬 민감한 반려동물을 위해 조명 밝기를 일부러 낮춘 것. 방바닥은 미끄럼 방지 타일로 시공했고 침대 앞엔 반려견이 안 다치고 오르내릴 수 있게 조그마한 계단 모양 쿠션을 뒀다. 낯선 곳에 가면 냄새를 맡거나 소변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특성을 고려해 콘센트도 가구 위쪽 높은 곳에 달았다.
특별한 날엔 도심 속 고급 부티크 호텔로
소노펫처럼 넓은 공간을 제공할 수 없는 도심 호텔들도 나름의 전략을 세우고 있다.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는 레스케이프호텔(4성급)은 고급스러움을 무기로 골랐다. 반려동물과 함께 묵는 고객에게 '개모차(개가 타는 유모차)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브랜드(에어버기) 유모차를 무상으로 빌려준다. 객실 내엔 100만 원이 넘는 다이슨 청소기와 공기 청정기도 갖췄다.
올해부터는 반려동물 촬영 전문 스튜디오와 협약을 맺고 3월까지 반려동물 숙박 패키지를 예약한 손님에게 반려동물 프로필 사진 촬영권을 준다. 비싼 가격에도 반려인 전용 객실 12개는 거의 매 주말마다 꽉 찬다고 한다. 이 호텔 관계자는 "주로 20대 여성들이 강아지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많이 온다"고 귀띔했다.
서울드래곤시티도 2022년부터 4개 호텔 중 최상위급인 '그랜드 머큐어'(5성급)에서 반려인 전용 객실을 29개 운영하고 있다. 반려견도 엄연한 손님임을 알리듯, '나는 호텔 고객입니다'(I am a hotel guest)라고 쓰인 목걸이를 증정한다. 1층엔 산책로를 마련했고 반려인 전용 엘리베이터도 따로 내놨다. 한 마리당 5만5,000원 추가 요금이 발생하는데 2022년 이것만으로 8,000만 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을 정도다.
외식업·상조업계도 반려인 시장 본격 '정조준'
'멍멍이 고객'에 진심인 곳은 호텔뿐만이 아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5일 경기 구리시에 국내 첫 반려동물 동반 매장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규제 샌드박스 특례 덕분에 반려견과 함께 들러 취식할 수 있는 매장을 열 수 있었다. 다만 모든 공간을 반려견과 함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2층에 약 165㎡(50평) 크기로 '펫 존'이 따로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가이드에 따라 사람이 먹는 음료를 만드는 1층엔 반려견이 입장할 수 없어서다.
개점 첫날 오전부터 구리갈매DT점은 반려인과 반려견들로 북적였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이른 아침 출발해 왔다는 김모(58)씨는 '포토 존'에서 푸들 로하(6) 사진을 연신 찍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서너 번 반려견 카페를 찾아다닌다"면서 "(스타벅스) 여기는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약속이 있는 날엔 로하를 '강아지 유치원'에 맡기거나 어딜 가든 함께한다고도 했다. 왜 그렇게 지극정성인지 묻자 "가족이니까 당연한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외면하고 싶겠지만, 만남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이별도 찾아오는 법이다. 보람상조는 지난해 8월부터 반려동물 전용 장례 상품 '스카이펫'을 출시했다. 반려동물 관련 '1호 사업'이다. 단독 추모실, 전용 관, 유골함, 수의와 생전 모습을 담은 액자 등을 제공한다. 전문 장례지도사가 직접 염습하고 전용 차량도 지원한다.
특히 자체 특허 기술로 제작하는 생체 보석 '비아젬'도 만들어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반려동물의 털이나 발톱 유골 등 생체 원료를 혼합해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보석이다. 고객 선택에 따라 위패나 장신구로 만들어준다. 보람그룹 관계자는 "반려동물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펫 장례 서비스를 선보일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었다"면서 "그동안 업력으로 쌓은 노하우를 펫 장례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유통업계도 '상팔자 손님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 갤러리아는 서울 강남구 명품관에서 반려동물 욕실용품 브랜드 팝업매장을 열고 SSG닷컴은 반려동물 전문관 2주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온도 2022년부터 매달 5~9일을 '반려동물 데이'로 지정해 관련 용품을 할인해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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