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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배달하는 박쥐

입력
2024.01.15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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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서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의 박쥐. 한국관광공사 제공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의 박쥐. 한국관광공사 제공

중국 음식점에 가면 문에 '복 복(福)'자를 거꾸로 붙인 경우가 더러 있다. 중국인들은 뒤집힌 복 자가 집으로 복이 들어오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즉 올바로 서 있으면 복이 나가는 형상이라는 말씀. 해서 삿된 것을 물리치는 붉은색과 더불어 복 자를 문에 뒤집어 붙이는 것이다.

붉은색으로 삿됨은 막고, 복은 들어오게 하겠다는 행복에 대한 간절함이라고나 할까?! 한 세대 전만 해도 정초에 복만 건져서 받겠다는 복조리를 걸어두었던 우리 풍습이 오버랩된다.

중국에는 만연한 문화인데, 왜 우리에게는 이런 풍속이 없을까? 우리는 직접적인 복 자보다 은유적 상징으로의 복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전통 문양에는 '날아가는 박쥐'가 있다. 박쥐 하면 떠오르는 건 '이솝우화'의 조류와 길짐승 사이에서 얍삽한 이중성을 취하는 부정적인 모습이다. 물론 미국 만화 캐릭터 배트맨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는 모두 현대에 구축된 박쥐의 이미지일 뿐이다.

날아다니는 박쥐는 경복궁의 대비 공간인 자경전을 필두로 양반의 멋 부린 갓, 또 벼루나 반닫이 장식 등에서 폭넓게 발견된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시집오는 며느리의 혼수나 한복에서 박쥐 문양을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솝우화'의 부정적 이미지 확산으로 인해, 박쥐는 급속한 멸종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럼 우리 조상들은 왜 나는 박쥐를 선호 도안으로 삼은 것일까? 박쥐는 한자로 '박쥐 복(蝠)'으로 표기한다. 이 복의 발음이 '복 복'과 같다. 해서 말장난처럼, 복이 날아서 들어온다는 의미로 박쥐를 차용한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설마? 옛 분들이 이런 어설픈 아재 개그를 했을까?' 싶은 이들이 있으리라.

그런데 돼지의 한자는 '돼지 돈(豚)'이다. 돈가스나 한돈 등을 생각해 보면 되겠다. 돼지의 발음이 돈이기 때문에 돼지는 화폐, 즉 돈의 상징이 된다. 돼지꿈이 좋다고 했던 것도 사실 이런 말장난에서 유래한 것이다. 돼지저금통도 그렇고. 또 고사상에 스마일 돼지머리가 올라가, 코와 귀에 돈을 꽂고 입에 돈을 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예전에도 아재력이 높은 분들이 있었고, 아재 개그가 유행했던 것이다. 문화는 상징으로 흐른다. 그리고 박쥐의 길상은 '이솝우화'에 밀려 사라지고, 이제는 점차 거꾸로 복이 수입되는 모양새다. 그래도 거꾸로 복보다는 우리 전통의 나는 박쥐가 낫지 않을는지! 새해를 맞아 한번 생각해 본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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