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의견수렴 봐야"… '참사 외면 부각' 역풍 우려
"피해자 보상에 도움 안 돼"… 법안 반대 입장은 여전
대통령실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모습이다. 곧바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과는 사뭇 다르다. 두 법안 모두 4월 총선에서 여당에 악재인 점은 같지만, 여론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해 거부권 행사 시점과 대응 방향을 고심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2일 이태원 특별법과 관련 "절차적으로나 내용 면에서나 문제라는 인식이 많다"면서도 "정치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 만큼 여당 의견수렴 결과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여당과 관련 부처 의견을 종합해 입장을 정할 계획이다.
반면 김건희 특검법의 경우 정부로 넘어온 다음 날인 5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 통과 이전에도 거부권을 강조하며 정부와 여당이 한목소리로 법안의 부당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에 비해 이태원 특별법은 '의견 수렴'을 강조하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민 여론을 더 들어보고 의원들 의견도 듣고 판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야당 강행 처리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기까지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5일, '간호법'은 13일, '노란봉투법·방송3법 개정안'은 15일 걸렸다.
앞서 특검법의 경우 국회 통과 이후 거부권을 놓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통령실에 불리한 사안이었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개입 의혹을 놓고 '뭔가 찔리는 것이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이태원법은 즉각 거부할 경우 '참사를 외면하는 정부' 이미지가 부각돼 여론의 역풍을 자초하는 격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법안의 세부적 문제보다 참사 사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 자체가 주목받을 것"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이익만 따지면 거부권 행사가 불이익"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참모도 "특조위가 온전한 피해자 보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맞다"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정부가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다'는 오인을 사게 될까 봐 고민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거부권을 포기하고 법안을 바로 공포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대통령실과 여당 모두 △참사 후 수사를 통해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이고 △법안상 특조위에 대통령 인사권이 봉쇄됐다며 특별법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유가족을 직접 설득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앞서 이태원 참사 1주기 당일에 유가족을 만나지 않아 여론의 비판이 커지자 어릴 적 동네 교회를 찾아 추도 예배에 참석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