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리전 구도 대만 16대 총통 선거
친미·독립 노선 라이칭더 40% 득표 당선
중국, 대만 군사·경제 압박 수위 올릴 듯
'미중 갈등' 고조 갈림길 양국 선택 주목
대만 제16대 총통 선거에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다. '친(親)미국·현상 유지(사실상의 대만 독립국 유지)' 성향 민진당과 '친(親)중국·통일' 노선 국민당 간 대결에서 대만인들의 선택은 '현상 유지'였다. 대만이 사실상 반(反)중국 노선을 택한 만큼 중국의 반발과 압박이 거세질 경우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대치 수위는 급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친미·독립 성향 민진당 후보 무난한 승리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3일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라이 총통·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는 558만6,000표(득표율 40.05%)를 얻어 승자가 됐다. 친중 성향 제1야당인 국민당 허우유이 총통·자오사오캉 부총통 후보는 467만1,000표(33.49%)를, 중도 성향 제2야당인 민중당 커원저 총통·우신잉 부총통 후보는 369만 표(26.46%)를 각각 얻었다. 투표율은 2020년 총통 선거 74.9%에 비해 약간 떨어진 71.8%를 기록했다.
투표일 전 여론조사에서 라이 후보는 대체로 3~5%포인트 차로 허우 후보에 앞서 있었다. 라이 후보의 이런 우세 흐름이 투표 당일까지 이어진 셈이다. 민진당은 라이 후보 당선으로 12년 연속 집권하게 됐다. 라이 당선인은 차이잉원 현 총통에 이어 5월 20일 공식 취임한다.
라이 당선인은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국립대만대 의대에 합격, 의사로 일했다. 1994년 정치권에 입문, 한국의 국회의원인 입법위원 4선 경력에 타이난 시장도 지냈다. 2017년에는 차이잉원 정권 두 번째 행정원장(국무총리)도 맡았다.
라이 당선인은 선거 승리 확정 직후 수도 타이베이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 참석해 "세계 각국에서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 대만이 민주 진영의 첫 번째 승리를 만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외부 세력(중국)의 개입을 막는 데 성공했다"며 "대만은 앞으로도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우 후보는 이날 오후 8시 타이베이 당사 앞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그동안 감사했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선거 전 지지율(약 21%)을 훌쩍 뛰어넘는 득표율을 기록한 커 후보는 패배를 받아들이면서도 "대만이 청색(민진당 상징색)·녹색(국민당 상징색)의 세상이 아님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중국, 라이칭더 비난 이어 대만 봉쇄 훈련 나설 수도
'미중 대리전'으로 불렸던 대만 선거가 미국 쪽 후보의 승리로 끝나면서 대만해협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웬티 성 호주국립대 교수는 14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조만간 대만을 향한 군사 시위에 나서는 동시에 라이칭더를 향해 신랄한 비난 공세를 벌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대만 간 협력 강화가 기정사실인 터라 이를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의 대만 담당 기구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라이 후보 당선 확정 2시간 만에 "이번 선거는 민진당이 대만 주류 민의를 대변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줬다. 대만은 '중국의 대만'"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만의 중국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는 "선거 결과를 직시하고 압박을 중단하라"고 반박했다.
중국이 꺼낼 대표적 압박 수단은 군사와 경제다. 오는 5월 라이 후보의 총통 취임을 앞두고 2022년 대만해협 봉쇄 훈련을 재현하거나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무력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만 여론 분열을 시도할 것"이라며 "군함·군용기를 동원한 대만해협에서의 훈련 범위도 확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대적 경제 제재도 이뤄질 공산이 크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대만산 화학제품 12개 품목에 대한 관세 감면을 중단했다. 선거 나흘 전인 9일에는 "대만산 농수산물, 기계류, 자동차 부품, 섬유 등에 대해서도 관세 감면을 중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라이 후보 당선 시 단행할 대규모 제재를 예고한 상태다.
미중 고위급 대화 지속...시진핑 대응 수위 고심
대만 의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된 점은 중국으로선 불행 중 다행이다.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 선거에서 민진당은 전체 113석 중 51석을 가져가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당이 52석, 민중당이 8석, 무소속이 2석을 각각 확보해 민중당이 '캐스팅보트'(가부 동수 시 결정권)를 쥐게 됐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으로선 국민당은 물론 이번 총통 선거에서 약진한 중도 민중당과의 스킨십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야 갈라치기를 시도, 민진당의 독립주의 노선을 견제할 것이란 뜻이다.
다만 중국이 '반발 수위'를 고심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독일마셜펀드의 대만 전문가인 보니 글레이저 연구원은 "중국이 대만에 극단적 조치를 취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미중관계 안정을 바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바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중정상회담 뒤 줄곧 "세계는 미중관계 안정을 바란다"며 긴장 이완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코로나19 이후 경제난 돌파를 위해 중국을 향한 서방 측의 경제 압박 수위를 낮춰야 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중국은 대만 선거 결과에 대한 내부 불만 여론 수렴과 미중관계 관리 필요성 사이에서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제프 창 대만 단장대 교수는 한국일보에 "미중 간 정상회담 후속 조치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중국의 양안관계 정책이 급변할 여지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중국의 차기 외교부장으로 거론되는 류젠차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대만 선거를 하루 앞둔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회동했다. 중국도 미중관계 관리 의지가 여전히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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