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보류 요양급여 횡령, 암호화폐 환전
공조 16개월 만에 고급리조트서 붙잡아
검거 직후 교섭... 3주 앞당겨 조기송환
수십억 원을 빼돌려 필리핀으로 도주했던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현지에서 검거된 지 일 주일만에 신속하게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경찰과 외교부가 추적부터 검거까지 필리핀 당국과 밀접하게 협력해온 덕에, 체포와 송환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이날 오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를 받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전 재정관리팀장 A(45)씨를 송환했다고 밝혔다. 오전 5시쯤 인천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A씨는 경찰 호송차에 탑승해 공항을 빠져나갔다.
A씨는 2022년 4~9월 건보공단 재정관리실에서 채권관리 업무를 맡으며 알게 된 채권자의 계좌정보를 조작해, 진료비용을 본인 계좌로 입금하는 수법으로 46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이 돈은 채권압류 등으로 지급이 보류됐던 17개 요양기관의 진료비였고, 건보공단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 횡령 사건이었다.
A씨는 공단이 병원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포착하면 진료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는 허점을 악용했다. 그는 지급보류된 금액을 병원에 지급한 것처럼 허위 입력하는 식으로 본인 계좌로 7차례 송금했다. 추적을 피할 목적으로 범죄수익을 가상화폐로 환전하는 용의주도함도 보였다.
범행 직후 A씨가 필리핀으로 도피한 사실을 파악한 경찰은 인터폴 적색수배(피의자의 위치 특정 및 검거·송환 요청)를 발령해 추적에 나섰다. 현지 정보원을 활용해 A씨의 근거지를 특정한 경찰은 이달 9일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A씨가 투숙 중이던 마닐라의 고급 리조트로 출동했고, 5시간의 잠복을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그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애초 A씨 송환은 한 달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경찰과 외교부 등의 노력으로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다. 필리핀 현지의 코리안데스크(외국 한인 사건 전담 경찰부서)와 경찰청, 주필리핀 대사관이 현지 이민국과 적극 교섭에 나서 검거 일주일 만에 조기송환이 가능했다. 외교부는 앞선 검거 작전 때도 필리핀 법무부 장관에 협조 서한을 보내거나 이민청장과 면담을 하는 등 공조 역량을 총동원했다.
경찰은 범죄수익 은닉 등 A씨의 추가 혐의 등을 조사하는 한편, 범죄수익 환수를 위해 계좌 동결 등 필요한 조치를 모두 동원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죄자가 세계 어디로 도피하더라도 끝까지 추적해 법의 심판대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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