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기관 민낯 : 새마을금고의 배신>
<2> 믿지 못할 골목 금융왕
광명 금고 사건으로 본 지역 금고의 그림자
새마을금고 출신 2명이 대출중개업소 차려
이사장 되자 금고 자금을 대출 청탁 돈줄로
직원들의 "부실 대출 가능성" 보고도 묵살
부이사장 아들은 '과속 승진'… 탄원서 논란
편집자주
새마을금고 계좌가 있으신가요? 국민 절반이 이용하는 대표 상호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가 창립 60여 년 만에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섰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내부 구조는 시대에 뒤처진 탓입니다. 내가 맡긴 돈은 괜찮은지 걱정도 커져갑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새마을금고의 문제를 뿌리부터 추적해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부실 대출? 그거 OO 금고 얘기잖아요. 광명 새마을금고는 관련 없어. 우리 남편이 광명 금고 이사 김철준(가명)이랑 친해서 ‘철준아, 괜찮냐’ 했더니 ‘형님, 걱정 마세요’ 했다니까.”
지난 12일 경기 광명전통시장에서 만난 60대 여성 상인 A씨는 기자에게 잘못짚었다는 투로 대꾸했다. ‘광명 금고 이사장이 부실 대출을 해줘 문제가 됐다던데 아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오히려 지역 내 다른 금고에서 사고가 났다고 들어서 광명 금고로 돈을 옮긴 사람이 많다”고 했다.
시장의 다른 상인들도 새마을금고를 단단히 믿었다. ‘광명 금고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이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가족 같은 곳’으로 여겼다. 떡집, 화장품점, 영양제 가게… 시장 대부분의 점포에는 새마을금고 달력이 걸려 있었고, 벽면에 금고 계좌번호를 적어둔 곳도 여럿 보였다. 광명 금고에서 나눠준 앞치마를 두른 상인도 많았다. 그만큼 직원들은 살가웠다. 시장 안에는 120㎡(36평) 남짓한 지점(출장소)이 있어서 종일 분주한 상인들이 편히 돈을 맡길 수 있었다. 식품류를 파는 60대 점주 B씨가 말했다. “소문 듣고 불안해서 광명 금고에서 돈을 조금 빼긴 했어. 근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른 데 못 가. 새마을금고가 골목 상인들이 거래하기엔 제일 편하거든.”
그럴 만도 했다. 얼마 전까지는 금고에서 ‘파출 수납’도 해줬다. 시장 상인들이 바쁠 때 금고 직원이 직접 찾아와 돈을 받아다가 대신 입금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광명 금고는 전국 1,288개 지역 금고 중 자산액 22위(약 1조850억 원∙2023년 말 기준)인 초대형 금고다. 하지만, 상인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금고 내부는 2020년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금고 직원이던 윤모(62)씨가 이사장으로 선출된 뒤부터다. 한국일보는 서민금융기관을 개인 금고처럼 여기며 잇속을 챙긴 윤씨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취재했다. 이를 통해 일부 이사장들의 윤리 의식 부재와 지역 새마을금고의 부실한 내부 통제 체계를 들여다봤다.
연체, 재무 건전성 탓 '대출 불가' 기업들 몰려
‘엘앤와이제이(L&YJ)’라는 회사가 있다. 광명 시내 고층 빌딩에 점포 한 칸을 빌려 영업하는 대출중개업소다. 평범해 보이지만, 창업자 2명의 이력이 화려하다. 광명 새마을금고 전무였던 윤씨와 새마을금고중앙회 공제마케팅본부장까지 지낸 이모(65)씨가 2019년 7월 자금 50%씩을 투자해 세웠다.
이들은 1년 뒤 대담한 범행을 본격화했다. 2020년 7월, 윤씨가 광명 금고 이사장 선거에서 당선되자, 금고 자금을 ‘돈줄’ 삼기로 마음먹었다. 돈이 급한 이들에게 대출해주고 중간에 수수료를 떼어먹는 구조를 짠 것이다. 이씨가 알고 지내던 술집 사장 C씨에게 “대출 희망자를 소개해주면 대가를 주겠다” 제안하면서 ‘검은 거래’가 성사됐다.
C씨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대출을 원하는 업체를 찾아 이씨에게 여럿 소개했다. 대부분 부실기업들이었다. 대출금 연체 이력이 있거나 재무 건전성 등이 나빠 다른 금융기관에선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고 거절당한 곳들이다. 정당한 방법으로는 돈을 꾸기 어렵게 된 업체들은 주변 소개로 알게 된 C씨에게 ‘SOS’를 쳤다. C씨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이씨와 윤씨를 통해 광명 금고 등에서 대출받도록 주선한 것이다. 시장 상인들이 고되게 벌어 금고에 맡긴 쌈짓돈은 이렇게 부실 업체의 통장으로 이체됐다.
광명 금고 직원들이 보기에도 금고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이사장이 바뀐 뒤 이상한 대출 요청이 너무 많아졌다. 브레이크를 걸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2020년 9월에는 건설업자 D씨가 이씨를 통해 “경기 양주에 주거단지를 지으려고 하는데 개발 자금을 대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광명 금고 대출 담당 직원들은 사업 부지 등을 꼼꼼히 살펴본 뒤 회의를 열었다. “미분양 가능성이 있고, 토목공사 진척이 더딘 데다 입지도 좋지 않아 부실 대출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대출 승인 권한이 있는 윤씨는 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두 차례에 걸쳐 50억 원을 대출해주도록 지시했다. 직원이 빨리 처리하지 않자 전화해 다그치기도 했다. 결국, 대출이 나간 날 대출중개업소 L&YJ 법인 통장에는 9,140만 원이 꽂혔다. D씨의 회사가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송금한 청탁 수수료였다.
"공실 상가 잔뜩" 보고에도 수백억대 대출
돈맛을 본 윤씨 일당은 '큰 건'으로 눈을 돌렸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거액 대출 청탁도 들어주기 시작했다. 대출 희망액이 크면 함께 대출해줄 다른 새마을금고까지 알아봤다. 광명 금고의 고객대출팀장인 E씨가 차주(대출받는 기업)와 금고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윤씨가 L&YJ 법인카드로 174만 원 상당의 골프연습장 1년 회원권을 끊어주는 등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공들였던 직원이다.
이씨는 2021년 1월 세종시에 상가 건물 2개동을 짓는 프로젝트 시행사인 F사 대표를 만났다. 큰 금액의 PF 대출을 원하자, 이사장 윤씨에게 청탁하는 한편 함께 대출해줄 다른 금고도 모았다. E씨에게는 “대출 주관 금고를 섭외해달라”는 역할을 맡겼다.
광명 금고 실무자들이 사업지를 찾아 주변 여건을 살펴보니 매우 우려스러웠다. 세종시는 이미 상가 시장이 얼어붙어 있었다. F사가 상가 건물을 짓겠다는 터 인근 건물들도 공실이 많았다. 이 탓에 F사는 대주단(대출을 해주려는 금융사 모임)을 꾸리지 못해 사업 진척이 더뎠다. 한마디로 돈을 빌려줄 상황이 아니었다. “향후 분양이 제대로 안 돼 대출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금고 전무까지 나서 반대했지만, 이사장 윤씨는 요지부동이었다. 광명 금고 등 20개 새마을금고가 대주단에 참여해 모두 490억 원을 F사에 빌려줬다. L&YJ는 청탁 수수료로 13억2,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이씨는 이런 방식으로 부실 차주들이 약 1,200억 원을 대출받도록 돕고 그 대가로 총 26억 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광명 금고는 약 200억 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이 된 '잿빛 경고'… 다른 금고들도 반발
광명 금고 실무자들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대출받은 업체들의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가장 먼저 ‘폭탄’이 터진 곳 중 하나는 세종 상가 사업지였다. 돈을 빌려준 20개 새마을금고가 대출금을 회수해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분양률이 69%는 돼야 했다. 하지만 2023년 초까지 분양률은 20%대 초반에 멈춰 있었다. 대주단의 다른 실무자를 상대했던 E씨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상가 분양률이 올라가야 수분양자 명의로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시행사는 이 돈으로 공사비를 충당한다. 건물을 다 지어야 미분양담보대출을 받아 대주단이 탈출할 수 있는 구조였다.
결국, 공사에 드는 필수 사업비조차 부족한 상황에 몰리자 대출 (채권) 등급은 ‘정상’에서 ‘요주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E씨가 이 상황을 돈을 빌려준 다른 금고에 알리자, 금고 담당자들은 반발했다. 요주의 대출이 되면 충당금(손실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모아두는 돈)을 더 쌓아둬야 해 금고 수익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15일 찾은 세종시 상가 공사 현장에는 3, 4명의 노동자만 보였다. 이들은 가설 지지대 위에서 여전히 작업하고 있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8월 완공됐어야 하지만, 여전히 공사가 끝나지 못했다. 건물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부이사장 아들 승진 부적정"
노골적인 금융 범죄가 언제까지 감춰질 수는 없었다. 윤씨와 이씨의 행각은 수사기관에 꼬리가 밟혔다. 검찰은 지난해 7월 두 사람을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했고, 1심 재판부는 지난달 21일 윤씨에게 징역 9년(벌금 4억 원, 추징금 3억2,000만 원)을, 이씨와 C씨에게는 각각 징역 4년(추징금 23억 원)과 3년(집행유예∙추징금 2억8,000만 원)을 선고했다.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갔지만, 광명 금고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윤씨가 구속된 이후 이사장 대행을 맡은 부이사장 고모(72)씨 아들의 ‘과속 승진’ 논란이 대표적이다. 아들 고씨는 2016년 6월 아버지가 이사로 있던 광명 금고에 시간제 업무보조원으로 입사했는데 2018년 4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고씨의 아버지는 2020년 9월 부이사장이 됐고, 고씨는 2021년 1월 이사회 의결을 통해 정직원(6급)이 됐다. 그리고 6급 승진 2년 만인 지난해 1월에 5급으로 재차 직급을 높였다. 새마을금고 인사 규정상 5급으로 승진하려면 4년 이상 근무해야 하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측은 고씨의 승진이 부적정했다고 보고, 다음 달 조치를 취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광명 금고는 윤씨에 대한 법원 선고를 앞두고 직원들에게 탄원서 서명을 받아 법원에 제출한 것이 알려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탄원서에는 '피고인 윤OO에 대한 선처를 부탁한다'는 내용이 적혔다.
※<제보받습니다> 지역 새마을금고와 중앙회에서 발생한 각종 부조리(부정·부실 대출 및 투자, 채용·인사 과정의 문제, 갑질, 횡령, 금고 자산의 사적 사용, 뒷돈 요구, 부정 선거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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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장님의 이중생활
<2> 믿지 못할 골목 금융왕
<3>시한폭탄 된 PF 대출
<4> 60년 전 약속은 어디로
<5>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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