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은 극단적 생각을 키우는 토양이 된다. 토론을 거듭할수록 중간 지점으로 의견이 수렴하는 게 아니라 혼자 의사결정을 할 때보다 더욱 극단적인 결론이 나온다는 게 여러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이들이 세력화되면 집단 바깥에서 아무리 팩트를 말하고 편향성을 지적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양성은 억제되고 동질성은 강화된다. 테러리스트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얘기도 이 같은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일찍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일상으로 파고드는 집단 극단화의 위험성(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 대해 경고했다.
집단 극단화의 부작용이 가장 심각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정치판이다. 추구하고 선호하는 바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이성의 끈을 조금만 놓아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쉽게 수용하지 않게 된다. 특히 그 집단에 권위적인 리더가 있으면 대단히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 정당과 극우 정당이 득세하는 것도 집단 극단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위험 신호는 우리나라에서도 감지된다. 양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내부에선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은 개별화된 다수는 조직화된 소수를 이기지 못한다는 속설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두 정당 내 강성 지지층의 비율이 높지 않은데도, 수뇌부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민심과 상식을 귀담아듣지 않고, 그들끼리 토론해 도출한 편향적인 내용을 반복적으로 주입한 결과다. 여기에 이낙연·이준석 전 대표의 탈당으로 민주당과 국민의힘 내부의 다양성이 더욱 줄어들면서, 양대 정당은 예전보다 훨씬 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됐다. 집단 극단화를 통해 극단주의가 싹틀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과다 대표된 팬덤층의 주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향의 다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직화된 소수는 자신들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띄우며 세력을 키우는 반면, 반대되는 의견은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들이 나와도 비논리적이고 조작된 것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총선이 80일도 안 남았다. 우리는 투표장에서 스스로 판단해 후보자를 선택했다고 믿고 싶겠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설득당한 결과물일 수 있다. 특히 정치적 이슈에 대해 생각이 뚜렷하지 않다면, 자기도 모르게 강성 지지층의 주장을 이미 흡수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주장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판 못지않게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는 스포츠 세계의 지도자에게 해답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내 삶은 내가 주도권을 쥐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의지에 휘둘리게 된다.”(손웅정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 “길이 없다면 스스로 찾아야 하고 모든 것은 본인이 만들어가야 한다. 남들이 말하는 대로 무심코 보낸 하루가 나중에 엄청나게 큰 시련으로 돌아온다.”(김성근 ‘인생은 순간이다’)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는 것 못지않게, 누구에게도 설득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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